[기자수첩] 엇나간 일자리 정책…정규직 두고 싸울 때인가?
[기자수첩] 엇나간 일자리 정책…정규직 두고 싸울 때인가?
  • 천동환 기자
  • 승인 2019.09.24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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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소속 고속도로 톨게이트 요금 수납원들의 한국도로공사 본사 점거가 보름 넘게 이어지고 있다. 직접고용을 요구하는 수납원들과 이를 거부하는 도로공사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면서 갈등이 점점 심화·장기화하는 모습이다.

이번 갈등을 보면서 완전히 엉뚱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 듯한 정규직화 정책에 대해 생각해봤다.

도로공사는 빠르고 편리한 고속도로 진·출입을 위해 스마트톨링시스템을 전국 고속도로에 도입할 계획이다. 이는 도로공사 '고객헌장'에 담긴 핵심사업이다. 스마트톨링은 고속도로 이용 차량의 번호판을 자동 인식해 통행료를 청구하는 시스템으로, 현금이나 하이패스 단말기가 없이도 고속도로를 드나들 수 있다.

기본적으로 요금수납원이 없어도 운영 가능한 고속도로가 되는 것이다. 그럼 6500여명에 달하는 수납원들의 일자리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스마트톨링시스템을 통해 정산된 요금을 청구·독촉하거나 고속도로 주변 환경을 개선하는 등의 대체업무가 거론되고 있지만, 아직 확실하게 손에 잡히는 것은 없다. 수납원들이 직고용을 강도 높게 요구하는 데는 이처럼 사라질 일자리에 대한 불안감도 적잖이 작용할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은 이런 불안한 현실에서 탈출할 수 있는 비상구처럼 인식되는 모양새다.

겉으로는 도로공사와 수납원들 간 분쟁으로 비치는 모습이지만, 문제의 근본은 단순하고 획일적인 정부 정책에 있다. 각 기관들이 처한 상황은 안중에도 없이 던져 놓은 '정규직화'라는 막연한 개념이 노사를 싸움장으로 밀어 넣은 꼴이다. 자회사냐 직고용이냐를 두고도 정규직을 받아들이는 노사의 인식이 하늘과 땅 차이다.

고속도로 수납원을 놓고 봤을 때 정부가 진심으로 이들의 일자리 안정을 염려했다면, 스마트톨링 시대에 대비한 대책을 진작부터 깊이 있게 고민해야 했다. 대단한 선물인 것처럼 꺼내 놓은 정규직화 정책은 첨단 기술 앞에서 사라질 업무에 대한 논점을 정규직·비정규직 문제로 몰고 갔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기존 일자리가 사라지고,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이런 변화에 적응해야 하고,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된다. 도로공사뿐만 아니라 모든 공공기관, 모든 산업을 막론하고 미래 일자리 대책의 초점은 여기에 둬야 한다.

고속도로 요금수납원들은 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사라져 가는 일자리를 위태롭게 부여잡는 처지가 됐을까? 왜 정규직·비정규직을 두고는 그토록 치열하게 싸우면서 새로운 시대 '일자리 비전'을 찾는 일에는 정부도 노사도 이토록 무관심할까?

cdh4508@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