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대형마트 종이상자 규제의 나비효과
[기자수첩] 대형마트 종이상자 규제의 나비효과
  • 박성은 기자
  • 승인 2019.09.16 14:3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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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환경부와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 농협하나로마트 등 대형마트 4개 체인이 종이상자(빈 박스)와 자율포장대를 매장에서 없애기로 한 협약을 두고, 소비자 편의 무시는 물론 대형마트에 대한 새로운 규제가 아니냐는 말들이 많다. 

환경부와 대형마트 간의 이번 협약은 장바구니 사용 활성화를 통해 불필요한 폐기물을 줄이자는 취지로 맺어진 것이다. 박스 포장에 쓰이는 테이프와 끈은 플라스틱이 주원료인데, 낮은 재활용률 때문에 연간 658톤(t, 3대 대형마트 기준)가량의 쓰레기가 발생해 환경오염의 우려가 크다는 게 환경부의 설명이다.

환경부는 대형마트에서 빈 박스와 자율포장대를 없애는 대신, 대여용 장바구니를 개발하거나 종량제 봉투, 종이상자를 유상 판매한다는 방침이다. 대형마트는 협약에 따라 이르면 올 연말부터 순차적으로 빈 박스와 자율포장대를 철수할 계획이다.

환경보호와 친환경문화 확산을 위한 정부 취지는 공감한다. 그러나 협약을 추진하기 전 현장에 대해 제대로 고민을 했는지는 의문이다. 빈 박스와 자율포장대는 대형마트가 장바구니에 여러 상품을 한 번에 담기 힘든 소비자 애로를 감안해 제공한 편의 서비스다. 장바구니에 담기에는 종류가 많고 부피가 커, 제품에 흠집이 나거나 모양이 망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감안했다면 정부는 협약을 맺기 전 종이 포장테이프와 같은 재활용이 가능한 제품의 대체 유무를 파악하거나, 정책 실효성과 관련한 소비자 설문을 진행하는 등의 최소한의 성의를 보인 게 필요했다. 하지만 이런 과정 없이 ‘환경보호’라는 명분만 내세워 소비자 편의를 없앤다고 하니, 다수의 소비자와 시민단체들이 납득할 수 없는 ‘탁상공론’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유다.

한편으로는 정부의 이런 지침이 대형마트를 겨냥한 또 다른 규제는 아닌지 의심도 든다.

환경부는 대형마트와 맺은 ‘자발적’ 협약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지만, 실상은 대형마트가 소비자에게 제공했던 편의를 없애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빈 박스와 자율포장대는 마트에서 다량으로 제품을 구매하는 소비자에게 상당히 유용한 수단이다. 그러나 이런 편의가 없어지면 소비자는 더욱 온라인 주문에 쏠릴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대형마트는 올 추석 직전 의무휴업을 하면서 매출에 타격을 입은 상황이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보통 설·추석 등 대목 직전 일요일 매출은 전체 명절 매출의 많게는 20% 이상을 차지한다. 비단 의무휴업뿐만 아니라 영업시간과 출점제한 등 여러 규제에 치여 이커머스(e-commerce)에 주도권을 내준지 오래다. 

현장에 대한 꼼꼼한 접근과 치열한 고민 없는 행정은 명분과 실리 모두 챙기지 못한 채, 불편만 남길 뿐이다. 환경부와 대형마트의 빈 박스, 자율포장대 철수 협약도 탁상행정의 또 다른 사례로 남을까 걱정스럽다.

[신아일보] 박성은 기자

parkse@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