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는 환경규범 준수를 넘어서 이제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 이행 여부를 EU의 공공조달 참여 기준으로 삼고 있다. 작년 EU는 한-EU 자유무역협정 ‘무역과 지속가능발전 장’의 ‘ILO 핵심 협약 비준을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한다’는 조항을 들어 정부 간 협의를 요청해왔다. 한-EU FTA의 무역과 지속가능발전(제13장)은 ‘노동과 환경 분야 의무 가운데 하나로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EU는 우리 정부에 ILO 핵심 협약(8개) 중 아직 비준하지 않은 4개 협약의 비준 문제를 제기했다. 한국과 EU는 한-EU 자유무역협정 체결 시 ILO 핵심협약 비준 약속했다. 한국은 1991년 ILO 정식 회원국이 됐지만, 핵심협약 8개 가운데 결사의 자유(제87호, 제98호)와 강제노동 금지(제29호, 제105호 협약)에 관한 협약 등 4개는 미비준 상태이다.
EU가 전문가 패널 소집 요청 조짐을 보이자 정부는 지난 5월 ILO 핵심협약 4개 가운데 3개의 비준 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한다는 방침을 밝히고 EU 측에도 설명했다. 그러나 결국 EU는 지난 7월4일 한국의 노동 기준에 대한 오랜 우려를 다루기 위해 패널을 요청했다.
올해 1월 공식 정부 협의 후 한-EU FTA 따른 중재 절차의 두 번째 단계가 시작됐다.
우선 정부 간 회의가 진행되고 여기서 결론이 나지 않으면 무역과 지속발전 가능위원회를 소집해 논의한다. 90일간의 회의에서도 결론이 나지 않으면 EU와 한국, 그리고 제3국 전문가 6명의 패널이 구성돼 사안 검토 후 권고를 담은 보고서를 발간하게 된다. 전문가 패널이 한국의 한-EU FTA 위반 결론을 내리면 한국은 FTA 역사상 처음으로 노동 조항을 위반한 ‘노동권 후진국’의 낙인이 찍힐 가능성 존재하고 이는 기업의 투자 회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한편, EU와 베트남은 6월30일에 자유무역협정(FTA) 및 투자보호협정(IPA: Investment Protection Agreement)에 서명했다.
해당 협정은 당초 2017년 비준 후 2018년 초 발효될 예정이었으나 EU가 베트남에 ILO 노동규약 가입을 요구하는 등 베트남 노동권 보장 문제로 비준 절차가 지연돼 올해 말 비준 및 발효가 예상된다. 베트남은 EU의 16번째 교역 상대국이자 동남아국가연합(ASEAN)에서 싱가포르에 이어 EU의 두 번째로 큰 거래 파트너이다. 해당 협정은 EU가 아세안 10개국 중 싱가포르 이후 두 번째로 맺은 협정이다. 해당 협정으로 EU는 FTA 발효 즉시 84% 품목에 대해 관세가 철폐되고 7년에 걸쳐 99%까지 철폐될 예정이다. 베트남은 65%의 품목에 대해 즉시 철폐 및 그 외 품목에 대해서는 10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철폐된다.
EU는 베트남과의 FTA 체결 조건으로 ‘결사의 자유 보장’ 등 노동 관련 기준에 베트남 국회 차원에서 보증을 요구했다. 따라서 EU-베트남 FTA 발효를 위해서는 베트남 국회가 ILO 8개 핵심 조약 중 3개 조약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에 관한 조약, 단결권 및 단체교섭권에 대한 원칙의 적용에 관한 조약, 강제노동의 폐지에 관한 조약)에 대해 비준 할 것을 동의해야 해야만 한다. 이처럼 EU는 사회적 책임의 확대를 역외국들에게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EU 자유무역협정 이후에도 우리가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EU의 공공조달 부문은 EU GDP의 약 14%를 차지한다. 공공조달의 주체인 관청은 EU에 25만개가 있다. 이들의 조달국은 현재 다양한 공급업체와 하청 협약을 체결하고 있으며, 공급업체 등록 과정에는 환경적, 윤리적, 사회적 측면이 우선적으로 고려된다. 윤리적, 사회적 기준은 확연히 눈이 띠거나 구입한 상품의 성격을 반영하지는 않지만 공급형태를 바꿀 수도 있는 상당히 중요한 이슈다. 정부는 ILO 핵심 협약 미비준이 수출 감소와 비관세장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고민하고 노사 간 합의를 통해 전략 마련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