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관계에 있어서 국가의 정책은 좋은(good) 정책과 나쁜(bad) 정책이란 없다. 그저 맞는(correct) 정책이냐 틀린(incorrect) 정책 이냐만 있을 뿐이다. 여기에서 맞느냐 틀렸느냐의 기준은 바로 국가이익이다. 즉 국가이익에 부합하면 맞는 정책이고, 국가 이익에 부합하지 못한다면 틀린 정책일 뿐이다.
최근 문재인 정부는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로 촉발된 일본의 경제보복에 맞서 지소미아(한일군사정보보호 협정) 폐기를 결정했다. 문제는 지소미아가 단순한 한일 간 군사협력 문제가 아니라 미국의 동북아 안보정책에 중요한 고리라는 점이다. 이에 미 정부는 지속적으로 지소미아 폐기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고, 심지어 미 행정부는 물론 미 의회까지 나서서 지소미아 폐기를 반대하고 나선바 있다. 더 나아가 미 정부는 우리 정부가 실시한 독도 방어훈련에 대해서도 깊은 우려를 표현했다. 한일 갈등에 대해 미국 정부는 중립적 위치는커녕 어찌 보면 일본의 손을 들어주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옛 속담에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말이 있다. 과거 2차 대전 당시 적국이었던 일본과, 6.25전쟁과 베트남전에서 함께 싸워 혈맹이라는 단어까지 등장한 우리 사이에서 미국은 일본의 편에 섰다. 우리 입장에서는 미국의 행위가 야속함을 넘어서 미워지기까지 한다.
그래서 그런지 문재인 정부안에서 이 기회를 빌어 동맹파보다 자주파들이 힘을 얻고 있다. 국가안보실 2차장인 김현종이 대표적으로 거론된다. 그는 지난 28일 기자회견을 열어 “당당하고 주도적으로 안보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군 정찰위성, 경항모, 차세대 잠수함 전력 등을 강화할 것”을 밝혔다. 표면적으로는 한미동맹의 업그레이드론을 내세우고는 있지만 내용인즉 한미동맹 보다는 자주국방론에 더 많은 무게중심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6.25 전쟁의 참화를 뒤로 한 채 우리는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산업화를 성공적으로 일구어 왔다. 북한이라는 군사위협 속에서 한미동맹은 국가 예산에서 국방비를 줄여 경제발전에 투입할 수 있는 절대적인 기회를 주었다. 한미동맹은 단순히 국방비 절감 차원뿐 만 아니라 미국으로부터 최혜국 지위까지 얻어 대미 수출을 통해 경제적 지위를 향상시켰다. 즉 한미동맹은 안보동맹을 넘어 경제동맹의 차원으로까지 확대돼 지금의 세계 11위의 경제강국으로 성장한 결정적인 원인이 된 것이다.
그런데 지난 박정희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서 자주국방론이 거론된 바 있다. 박정희 정부에서는 미 정부의 주한미군 철수가 노골화되자 심지어는 핵무기 개발까지 구상하면서 자주국방론을 거론했다. 그러나 박정희 정부의 자주국방론은 주한미군 철수를 막기 위한 일종의 협박성 구호였다. 반면에 노무현 정부에서 주장한 자주국방론은 정부 안에 자주파라는 세력이 주도한 것으로, 구체적인 방법론으로 전시작전권 환수를 추진한 바 있다.
이번에 문재인 정부에서는 한일갈등 국면에서 미국이 보인 방관, 나아가 일본 편들기에 대한 반발로 자주파들이 힘을 얻게 되고, 이들은 은근슬쩍 군사위성과 경항모, 차세대 잠수함을 거론하면서 세 번째 자주국방론을 내밀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군사장비의 경우 건설비용도 비용이지만, 운용비용이 오히려 몇 배에 달하는가 하는 측면은 애써 무시하고 있다.
지난 정부들이 이들 장비를 몰라서 안한 것이 아니라, 억 소리 나는 운용유지비용 때문에 포기한 것이다. 무엇이 국익에 맞는 옳은 정책인지를 심사숙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