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추 말복이 지났어도 불볕더위가 난동을 부린다. 하기야 포화 없는 경제전쟁이 벌어져 나날이 치열하게 공방을 주고받으니 세상이 열통에 빠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세론이 온통 한일 경제전쟁에 쏠려있는 와중에 평화경제를 폭파시키기라도 하려는 듯 북한 김정은은 연거푸 미사일을 쏘아대고 있다.
이 또한 한반도에 열기를 보태는 요인이다. 이 혼란 중에 정신 줄을 놓아버렸는지 보수연하는 보수 세력도 진보연하는 진보세력도 길 위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 보수연하는 보수, 진보연하는 진보라 부르는 것은 진정한 보수도 진보도 없다는 전제다.
먼저 진보 10년은 밥솥까지 통째로 깨먹으며 나라를 망쳤다고 비아냥대며 집권한 보수 10년을 돌아보자. 10년 동안 권력을 누리며 마치 100년 정권의 반석위에 앉은 듯이 오만하고 독선을 피우더니 끝내 보수의 주춧돌까지 파헤쳐 뿌리까지 썩게 만들어 놓고도 국민 전체에게는 고사하고 자파세력에게 조차 반성은커녕 일언반구 사과도 없이 얼치기 보수놀이를 즐기고 있다.
보수의 가치가 무엇이며, 제 길을 바로 가는 데 필수품인 나침반이 무엇인가. 보수란 자유의 바탕 위에 세운 시장경제를 굳건히 해 공동체의 행복을 지키는데 있다. 그래야 존재의 이유를 정당화 하고 힘을 받는다.
사람들의 자유의지를 소중히 하고 다소 울퉁불퉁 격차가 생겨도 자유시장이란 마당에서 먹거리를 키워 물심의 행복을 점진적으로 키워나가는 것이다. 한 편 보수의 길잡이 나침반은 앞세우는 것이 아니고 등 뒤에 메고 가는 것이다.
보수는 지나간 역사에서 교훈을 얻는다. 그리해 한 번 걸려 넘어졌던 말뚝에 다시 걸려 쓰러지는 것을 반복하지 않는 지혜를 얻는 것이다. 보수는 양심에 따라 과오를 반성하되 용기를 가지고 고백하며 끊임없는 성찰을 통해 우리 사는 세상을 한 단계 나은 행복세상으로 이끌어야 한다.
오늘의 한국 보수연하는 보수에게서 반성하는 고백을 들은 적이 있는가, 자기를 돌아보는 겸허한 성찰 태도를 엿볼 수나 있는가. 그래서 한국 보수가 살아날 미동은 커녕 기미도 없다.
진보연한 진보세력 즉 현재 집권한 세력과 그 궤를 같이하는 세력은 어떤가. 진보의 참된 가치는 평평한 운동장에서 공정한 룰에 따라 정의롭게 경쟁해 좀 모자라더라도 함께 사는 평등한 세상을 만들자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하늘아래 영원불변하는 것은 없으며 사람의 의지만 합쳐지면 언제나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가 있다는 신념이다. 창조라는 가치와 지나간 과거 보다는 내일이라는 미래를 더욱 소중히 하는 새로운 것에 대한 희망이다.
평등과 창조, 희망이 참 진보의 가치다. 학문적 이론이나 탁상공론이 아니라 권력을 가진 이상 근래의 유행어인양 회자되는 앙가주망의 실천이 더해져야 한다.
우리가 보는 진보연한 진보세력이 이러한 가치와 실천에 충실한가. 우리가 맡긴 권력은 평등과 창조와 미래와 희망을 위해 정당하고 정의롭게 행사되고 있는가.
고뇌와 노력, 인내는 보이나 그 과정이나 성과는 절대 미흡하다. 미래가 아니라 청산이란 이름으로 과거에 매달린 시간이 너무 길다. 급기야 국채보상과 죽창가를 들먹여 개화기로 돌아간 감성놀이라는 시비를 자초한다.
이스라엘이 낳아 21세기 지성으로 키워진 유발 하라리는 21세기를 위한 제언에서 초고속 급변하는 미래를 위해 AI, 넘치는 가짜뉴스, 새로운 대이동 이민자와 난민, 더워지는 지구, 테러와 디지털 독재, 상상을 초월하는 디지털경제와 정보기술. 생명과학에 대한 21가지 제언을 마치 새로운 묵시록처럼 일깨운다.
흘러간 물로는 다시 목욕할 수가 없다. 인류사에서 과오의 청산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가 한다는 것이 역설이자 진리다. 진보연한 진보세력도 길 위에서 길을 잃고 헤매기는 마찬가지다. 보수든 진보든 척하며 즐기고 셈하지만 말고 무소의 뿔처럼 외길로 가라. 관전과 평가는 5000만 국민에게 맡겨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