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간 무역분쟁이 점입가경이다. 강제징용 피해자 보상에 대한 대법원 판결로 촉발된 한·일 감정 대립이 아베정부의 대(對) 한국 화이트리스트 배제로 이어지자, 우리 정부는 GISOMIA(한·일 군사정보 보호협정)폐기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총칼만 안 들었지 사태는 이미 전쟁 수준이다. 갈 데까지 가보자는 것이다.
이번 사건은 마치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으로 번지는 양상을 보는 듯하다.
사실이번 한·일 갈등의 직접적인 원인은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개인 청구권이 지난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상으로 소멸됐느냐 아니냐는 입장 차이에서 출발했다. 이제 와서 진실이 무엇인지, 누가 잘못인지를 따지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이미 싸움은 벌어졌기 때문이다. 싸움이 벌어졌으면 무조건 이기고 봐야 한다. 그러나 싸울 때 싸우더라도 적어도 내가 손해를 보는 싸움은 하지 말아야 한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GISOMIA 폐기 건이다.
GISOMIA는 한국과 일본이 각각 수집한 대 북한 군사 정보를 서로 교환해 공유하자는 협정이다. 사실 그 동안 우리 국군은 대북 정보 수집을 대부분 주한 미군에 의지해 왔다. 물론 정보수집 역량 강화를 위해 금강·백두 사업을 추진해 실전에 배치했고, 이지스함도 건조했으며, 특히 탈북자 들을 중심으로 하는 휴민트(인적 정보)는 양과 질 면에서 가장 우수한 정보 자산이다.
반면에 일본은 정찰 위성 5기, 이지스함 6척, 조기경보기 17대 등 공간정보수집 능력이 한국을 훨씬 능가하고 있다. 단적으로 2016년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 당시 일본은 한국보다 4분 먼저 탐지했다. 4분이 별거 아닌 것 같지만, 4분이면 평양~원산 축선에서 미사일이 발사될 경우 수도 서울에 떨어질 시간이다.
특히 지난 9.19 군사합의에 따라 휴전선을 기점으로 서부전선은 10㎞에서 동부전선은 20㎞ 거리 이북을 항공금지 구역으로 설정한 바 있다. 이 때문에 우리의 군사정보 수집 장비인 백두·금강의 정보수집 능력은 불과 휴전선 이북 5~10㎞로 한정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나 정치권에서는 대일 보복전략으로 GISOMIA 폐기를 거론하고 있다.
GISOMIA는 미국의 글로벌 안보전략에서 출발한 하나의 국지적 안보동맹의 형태이다. 즉 미국은 유럽에서의 대 소련 견제, 중동에서의 대 아랍 극단주의 견제, 아시아에서의 대 중국 견제 등 3개의 글로벌 안보전략을 동시에 추진 중이다. 미국은 세계전략 차원에서 극동 문제는 미국이 주도하되 한·일 양국의 협조체계가 그 만큼 미국의 부담을 덜어주는 장치가 될 것임을 깊이 인식하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은 중국과 북한을 동시에 견제하기 위해 한·일간 GISOMIA 체결을 종용했고, 우여곡절 끝에 지난 2016년 박근혜 정부에서 체결된 것이다.
GISOMIA는 한·미·일 3각동맹의 한 축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미국의 세계전략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그동안 GISOMIA를 통해 한·일 양국이 얼마나 많은 군사정보를 주고받았는지를 따지는 것은 바보나 하는 짓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GISOMIA 폐기를 주장한다면 자칫 한미동맹을 깨자는 말과 같을 수도 있다. 이는 싸움에 이기기 위해 자해를 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