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백색국가' 제외에 조선·농수산·금융 경제보복 확산 우려
日 '백색국가' 제외에 조선·농수산·금융 경제보복 확산 우려
  • 박성은 기자
  • 승인 2019.08.02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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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업 지원' 두고 WTO 분쟁절차 본격화 전망
농수산식품 검역규제 등 비관세장벽 높일 가능성 커
일본계 대출 비중 큰 저축은행·대부업체 예의주시해야
일본 경제산업성이 7월 1일 고시한 수출무역관리령 일부 개정안. 개정안에는 ‘화이트국가’ 대상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내용을 담았다. (사진=연합뉴스)
일본 경제산업성이 7월 1일 고시한 수출무역관리령 일부 개정안. 개정안에는 ‘화이트국가’ 대상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내용을 담았다. (사진=연합뉴스)

일본 아베정부가 2일 우리나라를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에서 제외하면서, 조선과 농수산, 금융 등으로 통상 갈등이 확산될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일본은 우리나라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이 나온 직후 지난해 11월 우리 조선업을 겨냥해 가장 먼저 보복성 조치를 취한 바 있다. 일본은 우리 정부가 조선업계에 부당한 보조금을 지원했다고 주장하며 세계무역기구(WTO)에 정식 제소했고, 이번 추가조치를 계기로 분쟁절차가 본격화할 전망이다.

또, 이번 화이트리스트 제외가 농수산식품의 대(對)일본 수출과 직접적인 관계는 없지만, 경제보복 차원에서 비관세장벽을 통한 농수산물 규제 카드로 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금융 분야에서도 보복할 여지는 있으나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분석이 좀 더 우세하다.

조선분야를 살펴보면, 일본은 우리 정부의 조선업 구조조정 대책으로 자국의 조선산업이 피해를 봤다며 지난해 WTO에 정식으로 제소한 바 있다. 더욱이 이번 화이트리스트 제외를 계기로 분쟁절차를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일본은 지난해 11월 13일 WTO에 우리 정부의 조선업 구조조정 대책이 “유조선과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컨테이너선을 포함한 상선의 구입·판매·마케팅·생산·개발과 관련된 문제”라고 주장하면서 양자협의를 요청했다.

이에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해 12월 서울에서 열린 일본과 WTO 조선업 분쟁에 대한 양자협의에서 “조선업 지원은 금융기관들의 상업적 판단에 따라 이뤄졌으며 국제규범에 합치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양자협의는 WTO 분쟁해결 절차의 시작으로 협의가 결렬되면 본격적인 분쟁단계가 진행된다.

일본은 양자협의에서 합의하지 않고 분쟁해결패널 설치 등 분쟁절차를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 일본은 현대중공업그룹의 대우조선해양 인수와 관련한 핵심 절차인 기업결합심사에 제동을 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사이토 유지 일본조선공업회 신임회장은 지난 6월19일 도쿄에서 열린 취임 기자회견에서 “각국의 공정당국이 기업결합을 그냥 지켜볼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에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30일 기획재정부·산업통상자원부 등 관련부처와 협의를 통해 “일본 당국의 공정한 심사를 예상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일본 비관세장벽의 타깃이 될 수 있는 또 다른 분야로 농수산식품이 꼽힌다.

실제 마이니치 등 일부 일본 언론은 최근 일본정부가 반도체 소재에 이어 한국 농식품을 추가 규제품목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일본은 우리나라 농식품과 수산물의 최대 수출 시장이다. 주요 수출품목으로는 파프리카와 김치, 참치, 김, 전복 등이 있다.

지난해 파프리카 수출액의 경우 일본 비중은 99%에 달할 정도다. 김 전체 수출의 22.5%는 일본(1억1800만달러, 한화 약 1402억원)이 차지한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정부가 한국에 대한 수입쿼터를 대폭 줄인다면 김을 비롯한 우리 수산물 수출에 상당한 걸림돌이 될 수 있다. 파프리카를 비롯한 대일 수출 비중이 높은 신선채소의 경우, 검역 규제(SPS)가 엄격히 적용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개호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지난달 국회 업무보고를 통해 일본의 경제보복이 우리 농산물 수출로까지 확대될 경우, 일부 신선채소가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기했다.

금융 분야도 일본의 경제보복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일본계 금융사들이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 국내로 흘러간 자금을 회수해 위기상황을 악화시킨 것처럼, 이번에도 일본계가 자금의 만기 연장이나 신규 대출을 거부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는 것.

금융권도 이런 가능성을 원천 배제하진 않지만,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유는 일본계 자금이 국내 금융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적기 때문이다.

실제 5월 말 기준 일본계 은행 국내지점의 총여신은 24조7000억원으로, 이는 1분기 말 기준 국내은행 총 여신 1983조원의 1.2%에 불과하다.

6월 말 기준 국내 주식시장 내 일본계 자금(13조원)은 전체 외국인 주식자금(560조원)의 2.3% 정도다. 채권시장에서의 일본계 자금은 1조6000억원으로 전체 외국인 채권자금(125조원)의 1.3%에 그친 수준이다.

국내 은행들이 92억6000만달러(10조6000억원) 상당의 일본계 자금을, 여신전문금융사가 55억6000만달러(6조4000억원) 상당을 들여왔지만, 국내 금융사의 신용도로 미뤄볼 때 차환이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업계 전망이 우세하다.

또, 전 세계적으로 기준금리 인하 움직임 속에서 자금운용이 어려운 글로벌 금융사들이 일본계 자금이 빠지는 자리를 재빨리 메울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도 나온다.

일본계의 대출 점유율이 4분의 1에 육박하는 저축은행이나 대부업체 등 서민금융시장의 경우 정부가 예의주시해야 할 부분으로 꼽힌다.

parkse@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