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질고 현명한 황제였던 중국 한(漢)나라 문제(文帝)때 장석지라는 관리가 있었다. 그는 형옥(刑獄)을 관장하는 정위(廷尉)라는 벼슬에 있었는데, 어느 날 한나라 고황제(高皇帝) 유방(劉邦)을 모시던 종묘에 도둑이 들어 옥가락지를 훔치다가 발각됐다. 한 문제는 그 도둑을 장석지에게 넘겨 처리하게 했는데 장석지는 도둑에게 종묘의 물건을 훔친 죄안을 적용해 법률에 따라 사형에 처한 뒤 시신을 시장바닥에 버리는 기시(棄市)처분을 내렸다.
이에 문제는 “짐이 도둑놈을 정위에게 넘긴 이유는 그 놈의 집안까지 멸하도록 하는 것이었는데 사형에 그치다니 말도 안되오. 이는 종묘를 받드는 짐에 뜻에 맞지 않소”라며 펄펄뛰며 화를 내자 장석지는 관을 벗고 머리를 조아리며 “법으로는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法如是足). 형벌은 죄의 무겁고 가벼운 정도에 따라 차이가 있어야 합니다. 지금 만약 종묘의 물건을 훔쳤다고 족멸(族滅)이라 하셨는데, 만에 하나 어리석은 백성이 고황제의 능(陵)인 장릉(長陵)의 흙을 한줌이라도 훔쳐가는 일(=도굴)이 생겼을 때는 어떤 법을 적용 하시겠습니까”라고 반문했다. 한 참 동안 생각한 문제는 장석지의 판결이 옳다고 여겨 수용했다.
위 이야기는 사기(史記) 장석지열전에 기록돼 있는데 법을 다루는 자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법을 적용해야 하며 권력자 역시 자기 의사대로 법을 적용할 것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6월 17일 검찰총장 후보자로 고검장을 지내지 않은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을 파격적으로 지명했고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는 청문회 파행 등 우여곡절 끝에 2019년 7월 25일부터 제43대 검찰총장으로 취임해 임기를 시작했다.
신임 윤석열 검찰총장 앞에는 외부적으로 적폐청산 수사를 정리하고 국회 패스트트랙 대치와 관련된 수사 및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사건 등 정·재계 수사를 마무리 해야 할 뿐 아니라 내부적으로 공수처 설치와 수사권 조정 및 조직쇄신으로 인한 검찰 내부 동요를 다독여야하는 난제가 산적해 있지만 아마도 검찰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국민들에게 새로운 검찰 상(像)을 제시해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숙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검찰에 의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뻔한 고(故) 김대중 대통령도 ‘검찰이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라고 인정할 정도로 검찰은 공익의 대변자요, 사정(司正)의 중추기관으로 법치주의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이지만, 국민들의 눈에 비친 검찰은 국민에 충성하지 않고 권력에 아부하며 조직의 이익에만 몰두하는 반드시 개혁해야 할 대상으로 여겨지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다행히 다수의 국민들은 이번에 새롭게 임기를 시작하는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에 대해 검사가 되기까지의 남다른 사연, 노무현 정부 시절 대통령의 오른팔인 안희정과 후원자인 고(故) 강금원 회장의 구속 및 이명박 정부 시절 벌어진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건을 수사하다 좌천당한 이력, 촛불혁명이 요구한 적폐청산의 수행자로의 업적을 평가해 검찰개혁의 적임자로 보고 있는 듯해 검찰은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되찾을 수 있는 기회를 찾은 것 같다.
국민들은 검찰에게 ‘객관적 진실발견에 헌신하는 두 번째 판사’의 역할과 권력에 아부하지 않고 공평하게 법을 집행하는 법불아귀(法不阿貴) 정신을 실천하길 기대하고 있는데, 사법(司法)기능을 담당하는 판사와 같은 역할을 하면서 추상(秋霜) 같은 법의 집행자로 임하려면 권력과의 관계 절연(絶緣)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그렇기 때문에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확보가 검찰개혁의 핵심이 되는 것이다.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은 인사청문회에서 “많은 국민이 지켜보는 이 자리에서 정치적 중립을 확실히 지키겠다고 약속드린다”고 말했고 “국민의 입장에서 검찰의 조직과 제도, 체질과 문화를 과감하게 바꿔나가겠다”고 약속했는데, 이 약속을 지키고 이행하는 것이야 말로 국민들이 염원하는 환골탈태(換骨奪胎)한 검찰의 모습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정부와 여당에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
장석지가 공평한 법의 집행자로서 역사에 아름다운 이름을 남긴 것은 그가 뛰어난 인물이었던 것도 있지만 현명한 군주였던 문제가 장석지를 믿고 지켜주었기 때문임을 잊지 말고 정말로 시대적 소명인 검찰개혁을 원한다면 윤석열이라는 새로운 수장을 맞아 출범하는 검찰이 ‘국민 검찰’로 새롭게 태어날 수 있도록 정부와 여당은 절대로 정치적 이익을 위해 검찰을 이용하려는 마음을 품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