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영천성 남문안에 한국의병사 박물관을 건립하자
[데스크 칼럼] 영천성 남문안에 한국의병사 박물관을 건립하자
  • 신아일보
  • 승인 2019.07.28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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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욱 대구·경북 총괄본부장
 

국난을 극복한 호국의 성지 경북 영천에 한국 의병사 박물관을 건립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돼 주목을 받고 있다.

경북 영천은 국난을 극복한 호국의 성지다. 6.25때에는 낙동강 교두보의 최후 보루로써 영천전투에서 반격을 시도했고, 임진왜란 때는 관군의 연전연패로 선조 임금이 도성을 버리고 의주까지 몽진을 떠나 나라운명이 경각을 다툴 때 죽음을 무릅쓰고 임난 최초로 의병을 일으켜 영천성을 탈환해 나라의 운명을 바꾼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임난 영천성 대첩을 선조실록에는 '이순신의 명랑대첩과 함께 임난사에 가장 통쾌한 승리'라고 적고 있고 류성룡·김성일·김연 등은 '명랑해전과 동일한 승첩으로 영남좌도에 생기가 돌고 있다'고 했다.

영천성 수복의 여세로 왜병이 상부로부터 보급로가 차단됐으며 또한 관군과 명군이 반격할 여유를 주는 등 왜병이 육지에서 물러가는 전초전이 됐다고 한다.

당시 경상좌병사 박진은 영천성 수복전을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며 몸을 사렸을 때 정세아 영천의병장 등과 지역 지식인 60여명이 연명해 진주성에 있던 초유사 김성일에게 강좌의 의병들이 연합해 '영천성을 수복하겠다'며 청원서를 올렸다.

각 처에 숨어있던 관군들이 의병활동을 억누르고 있다며 의병의 독자적인 활동을 보장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초유사 김성일은 권응수를 의병장으로 임명하고 인근 의병을 총지휘하게 했다.

영천대첩연합군은 '창의정용군'이라 하고 좌도에 영천, 경주, 경산, 영일, 의성, 안동, 대구, 울산 등 의병연합군 (3,500~4,000여명)은 임진년 7월26일~27일 양일간 치열한 화공전으로 역사적인 영천성대첩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영천성 수복 논공행상에는 전쟁에는 참여하지도 않고 안강에서 무기를 지원한 좌병사 박진이 자신이 진두지휘해 세운 공인양 조정에 보고하면서 의병장 1-2명의 공적을 포상하는 등 의병활동을 크게 약화시켰다.

의병의 혁혁한 전과에 비해 초라하게 보이는 관군의 존재로 인해 의병활동을 퇴색시켰다는 것이다.

조정에서는 명나라 군사를 천군(하늘의 군사)이라며 높이 받드는 바람에 자연히 의병활동은 묻혀질 수 밖에 없었다.

뿐만 아니라 영천지역은 구한말 '을사늑약'직후 고종의 밀명을 받은 동암 정환직·정용기 부자(영천출신)는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산남의진)의 의병을 일으켜 서울 진공을 위한 북상계획을 시도한 의병 후예의 고장이다.

영천성 수복전투가 치열했던 영천교 상단 옛성 남문을 복원하고 남문옆 양날개 부분을 서세루 쪽과 창대서원 쪽 성벽을 연결 박물관을 건립하자는 것이다. 이 사업은 영천문화원에서 주장하던 영천성 복원사업이기도 하다.

영천호국원에는 6.25전승탑과 전쟁박물관이 건립된지 오래됐으나, 임난 영천대첩 기념관은 현재까지 건립되지 않고 있다.

영천시민들은 한국 의병사박물관 건립은 후손들의 사명과 의무라고 주장해 왔다.

최근 경북 영천시가 도심 외각지인 화룡동 일원에 역사박물관 건립을 추진중이라는 소식이다. 그러나 후보지 주변환경 및 주민 접근성 등의 논란이 일면서 답보 상태에 놓여 있다.

시민들과 관련 전문가들은 영천성 수복전투가 치열했던 영천교 상단 옛성 남문을 복원하고 남문옆 양날개 부분을 서세루 쪽과 창대서원 쪽 성벽을 연결 박물관을 건립을 주장하고 있다. 이 사업은 영천문화원에서 주장하던 영천성 복원사업이기도 하다.

전문가들은 지역주민들과 충분한 공감대가 형성돼야 성공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각계에서 우리나라 의병사를 다시 써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와 맥을 같이해 '국난을 극복한 의병 창의의 고장인 경북 영천에 의병사박물관을 건립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master@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