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은 삼복의 한가운데 들었고 장마는 오르락내리락 한다. 복더위 속에 한국과 일본의 해 묶은 갈등이 옮겨 붙은 무역 분쟁이 점입가경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아베 신조 정권이 복합적 술수를 깔고 무역을 빌미로 부리는 몽니가 도를 넘었다. 분쟁의 촉발은 우리 대법원의 일제 징용에 지접적인 증거가 드러난 미쓰비시그룹에 대한 최종 배상책임 판결에 아베정권이 정면 거부 의사를 밝히고 나서면서다. 속 좁은 불만 표출이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는 맞대응 차원으로 우리 대법원 판결이 정당함을 주장했다. 한 걸음 나아가 전 박근혜 정권에서 위안부문제 처리를 위한 합의에 따라 설치된 화해치유재단 해산을 공식적으로 밝히자 두 나라 간 갈등이 증폭됐다. 일본기업에 대한 배상판결은 강제노동에 대한 경제적 보상을 하라는 판결만이 아니라 제국주의의 잔재를 청산하기 위한 구시대 국제정치 문제가 복합적으로 포함돼 있다. 일본정부도 이런 이면의 뜻을 알고도 남을 터다.
그런데 아베 총리는 느닷없이 반도체 핵심소재 수출규제라는 무역규제 카드를 꺼내 들었다. 현실적 이해가 우리의 핵심 산업의 뇌관을 붙들고 나섰다. 고도의 정치적 문제가 깔린 한일 사이의 복잡하고 누적된 문제를 일거에 산업경제적인 문제로 시선을 돌리려는 술수가 빤히 보인다.
아베 정권은 이참에 내부적으로는 참의원 선거에서 이득을 얻고, 한편 북한 비핵화 문제의 해결과 한반도 문제에서 미·중 러시아 주도에서 소외되자 이를 지렛대로 다시 발을 들여놓고 동아시아에서 지속적인 헤게모니를 누리고자하는 고도의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다고 보면 지나친 억측일까. 아니다 일본의 국제정치, 특히 동아시아와 한반도에 대한 치밀힌 계산과 심모원려는 이미 역사가 증명하는 것이다.
당연 숨겨진 의도로 보아야 한다. 진행 중인 한·일간의 무역 분쟁은 단순한 경제적 보복의 차원을 넘어 섰다. 우리로서는 제4차 산업혁명 시대의 새로운 기간산업의 주력인 반도체생산 핵심부품을 틀어쥐고 무역 분쟁을 야기하는 아베 정권의 노림수는 한 수에 엄청난 이득을 노리려는 일본 특유의 정치·경제적 책략이라는 분석을 과소평가할 일이 아닌 것이다.
문제는 우리에게도 있다. 우리도 이를 계기로 좀 더 깊고 멀리 바라볼 필요가 절실하다. 당장 눈앞에 닥친 반도체 생산을 계속하려고 해당 기업의 총수가 일본 현지를 방문하는 것은 촌극 수준이다. 아무리 급해도 마땅히 정부가 먼저 풀어야 할 숙제다.
먼저 외교라인과 산업경제라인이 총력전을 펴면서 기업에 협조를 구하고 합동 대책을 구사하는 것이 상식이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자 핵심부품 국산화에 정부가 지원하고 나서겠다는 것은 이미 소 잃고 외양간 단속 하겠다는 하수다. 문제 발단의 초기부터 해당 부서인 외교부 장관은 보이지 않았다. 문제가 터져도 산업경제라인은 집안에 앉아서 기업체 총수를 모아 책상머리 회의를 하고 있다.
답은 현장에 있다. 필자가 느끼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국가의 명운이 걸린 치명적 분쟁에 우리는 하나같이 마지노선에 서고 배수진을 치겠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는다. 마지노 전술이나 배수진은 극적으로 절박한 전세에서 한 번은 효력을 낼 수가 있으나 전쟁이나 외교전에서는 금기나 다름없는 책략이다.
미국을 보라. 모든 국제적 현안문제는 폼페이오 국무장관 이하 외교안보라인이 먼저 나서 깨끗하게 설거지를 한다. 마지막에 트럼프대통령이 나서 회담하고 성명이나 발표하는 수순이다.
우리는 대통령이 정점에 있는 청와대가 나서고 때로는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는 형국이다. 정부부처가 실무 핵심이며 누적된 노하우를 가진 전문가 집단이다. 장관이 그 수장이다. “전쟁과 외교전에서는 마지노선에 서지 않고, 배수진을 치지 않는다” 청와대정책팀이 한 번 만 더 생각해 볼 말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