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1970년대까지 아시아·아프리카·라틴 아메리카 등 제3세계 신생국가들에서 가장 빈번하게 발생한 정치적 사건은 쿠데타였다. 심지어 아프리카 베닌(Benin : 당시 이름은 Dahomay)에서는 1주일 간격으로 쿠데타가 발생한 경우도 있었다. 이처럼 제3세계 신생국에서 쿠데타가 자주 발생한 원인은 이들 국가에서 가장 선진화된 엘리트 집단이 역설적이지만 바로 군부였기 때문이다.
신생국들은 대부분 2차대전 이후 식민지에서 독립한 국가들이기에 독립 이후 국가를 운영하기 위한 민간 엘리트 자원이 턱없이 부족했다. 대신, 전쟁 경험을 통해 무기체계 운용방법, 전투를 위한 물자와 인력의 관리 등 군대행정에 익숙한 군부가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그래서 제3세계 대부분의 국가들은 군부가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획득하고, 이에 반대되는 세력들의 역쿠데타가 발생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소위 군인정치의 시대였다.
그러나 산업화가 이뤄지고 점차 민간 엘리트들이 성장하면서 대부분의 국가들에서 문민화가 이뤄졌다. 문제는 문민화된 국가에서 군인정치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잔존하고 있는 것은 정치군인의 존재다. 정치군인들은 군인으로써의 본분인 국가안보보다 자기 자신의 출세와 영달을 목적으로 하는 사고에 사로잡히기 일쑤다.
해서 정치군인들은 정권에 따라 역사인식이 순식간에 뒤바뀌는가 하면, 국가 안보의 원칙보다 정권의 입맛에 맞는 정권안보에 자기의 초점을 맞추곤 한다.
최근 정경두 국방장관이 지난 3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보여준 모습은 많은 이들의 우려를 자아내고 논란을 야기 시켰다.
야당의원이 “6.25전쟁은 김일성과 (조선)노동당이 저지른 전쟁범죄행위인가”하는 질의에 한동안 답변을 하지 못했다가 뒤이은 “김일성을 도와 북한의 검열상과 노동상을 지낸 김원봉이 전쟁 책임이 있습니까 없습니까”하는 질문에는 아예 자료를 뒤적거리며 딴청을 피우는 모습까지 보였다. 적어도 사관학교를 나와 대장 계급장을 달았고, 국가안보 수장인 국방장관으로써의 모습은 그래서는 안됐다. 본인의 안보관에 따른 소신을 피력했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 장면이었다.
이러한 정 장관의 인식과 태도는 현 정부의 대북 정책을 고려한 것으로 보이지만 자칫 오해를 낳을 수도 있는 문제다.
지난 날 한국사회는 군인정치의 시기를 겪었다. 5.16 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박정희 정부는 그나마 산업화라는 명분도 있었고, 사실상 그 과실이 오늘에 까지 이르고 있다. 그러나 뒤 이은 전두환 정부는 집권 과정에서 12.12 사태와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역사적 비극을 초래한 바 있다.
군인정치 시기에 국민들은 적어도 안보를 불안하게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민주화 이후 문민시대에 혹시 정치군인의 존재가 국민들을 안보불안에 빠지게 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정권의 잘못이야 시간이 지나 국민들의 평가를 통해 재건할 수 있다지만, 정치군인의 잘못은 곧 국가의 존망과 직결될 수 있다.
국제정치에서 국가 간 협상은 확고한 원칙과 태도를 견지할 때 협상력은 극대화된다. 특히 국가안보와 관련된 협상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북한의 비핵화와 남북 평화 분위기 조성을 위한다면 적어도 국방부 만큼은 본분의 원칙을 지켜줄 때 더욱 협상력은 커지게 마련이다. 군 마저 평화분위기에 휩싸여 원칙은 물론 역사인식마저 흐려진다면 오히려 상대방으로부터 얕잡아보이게 되고 그 협상은 이뤄져도 수많은 손실을 입게 될 것이 자명하다.
훗날 정 장관이 정치군인이라는 오명을 쓰지 않고 시대적 사명을 떠받든 대한민국 수호자로서 기억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