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혁신 사례로 소개되는 미국 올린 공대는 짧은 역사에도 MIT와 어깨를 견주는 대학이다. 올린 공대의 강점은 여러 전공의 융합과 프로젝트를 중시하는 교육에 있다.
우리나라 대학들도 교육 혁신을 시도 중이다. 여기에 융합과 실무기반 교육은 빠지지 않는다. 하지만 아마도 올린 공대와 같은 성공을 거둘 확률은 희박하다. 우리에게는 혁신을 성공으로 이어줄 ‘투자’가 없기 때문이다.
산학협력은 대학교육의 발전 방향으로 항상 등장해온 정책과제다. 대학별로 산학협력단이 설립된 시기가 2003년이고, 지금까지 여러 산학협력 사업이 추진됐다. 올해는 ‘사회맞춤형 산학협력 선도대학 육성사업(LINC+)’에 3227억원의 예산이 책정됐다. 2018년에는 산학연협력 활성화를 위한 ‘산업교육 및 산학연협력 기본계획’이 마련되기도 했다. 산학협력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15년간 이어졌고, 날로 중요하게 다뤄져왔다. 하지만 그 노력에 비한다면 현재 나타나는 성과가 무척 미미하다.
앞서 예를 든 올린 공대는 정부 지원이 아닌 기업의 투자를 받고 있다. 기업은 문제 해결을 위해 대학을 찾고, 대학은 기업 컨설팅과 같은 역할을 하며 기업의 투자를 받는다. 기업이 문제를 해결할 대상으로 대학을 파트너 삼는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 산학협력에는 정부와 대학이 있을 뿐이다.
우리나라는 산학협력을 왜 기업이 아닌 정부가 주도하고 있는가에 대한 해답은 기업이 왜 기술개발에 관심이 없는에 있다. 건설산업의 경우 그 원인이 다른 산업보다 명확하게 드러난다. 기업이 기술개발의 노력을 보상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양이 아닌 질을 추구하는 사회로 바뀐 지 오래다. 하지만 공공건설사업만큼은 여전히 낮은 가격이 판단의 기준이 되는 양의 시대에 머물러있다. 낮은 가격은 낮은 품질과 낮은 이윤을 담보로 한다. 이러한 사업환경에서 건설사, 특히 중소건설사는 기술개발의 여력과 의지가 없게 되었다. 사업 수주를 위해 필요한 것은 낮은 가격과 ‘운’이지 기술력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 공공건설사업은 낮은 가격을 제시하는 기업을 찾는 것이 아니라, 보다 나은 품질과 나은 기술을 제공하는 기업에게 기회를 주어야 한다. 기술로 평가받고, 기술개발의 노력이 인정받는 문화가 싹터야 한다. 기업이 기술개발 노력에 대한 보상을 확신할 수 있어야 한다.
산학협력은 단지 정부의 지원금으로 유지되는 형태에서 벗어나 기업의 진짜 참여가 이어져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산학협력은 대학과 기업이 함께 윈윈하고 산업의 발전을 가져올 가장 큰 자원이 될 것이다. 그동안 첨단기술의 적용과 확산이 느린 편이었던 건설산업의 경우 기술개발의 효과는 더 극명할 수 있다.
대학은 실무를 접하며 현장의 지식과 역량을 키워가고, 기업은 기업 내부에 연구자산의 마련하지 않고도 기술개발을 진행할 수 있다. 현재 건설산업에서 기술개발은 대부분 공공 R&D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 중소건설사는 기술개발의 여력이 전혀 없다. 이들이 참여하는 기술개발은 건설산업 전반의 경쟁력 향상을 가져올 것이다.
또한 빠른 기술 변화에 대한 대응이 가능해진다. 우수 인재, 다양한 학문 영역, 기술, 아이디어 등 대학이 가진 인프라는 산업에 혁신 기술을 공급할 수 있는 훌륭한 토대이다.
산학협력은 4차산업혁명으로 이야기되는 빠른 기술발전에 대응하기 위한 중요한 방법이다. 그리고 산학협력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업이 기술개발에 대한 의지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그 열쇠는 정부가 쥐고 있다. 기술개발을 장려하는 구호나 지원금이 아니라, 정부가 발주하는 사업부터 기술로 경쟁하는 풍토를 만들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