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문재인 정부 ‘농업계 패싱’의 우려스런 나비효과
[기자수첩] 문재인 정부 ‘농업계 패싱’의 우려스런 나비효과
  • 박성은 기자
  • 승인 2019.06.27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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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내년도 농림수산식품 분야 예산 요구액에 대해 농업계가 부글부글 끓고 있다.

기재부에 따르면 2020년 각 부처 예산 요구액은 올해보다 6.2% 늘린 500여조원으로, 보건복지고용 분야는 12.9%, 국방은 8.0%, 외교통일은 5.7%, 환경 분야는 5.4% 증가했다. 반면에 농림수산식품의 경우 올해와 비교해 4% 줄인 19조2000억원에 그쳤다. 평균 증가율을 감안하면 사실상 10% 정도를 삭감한 것과 다름없다.

물론 국회통과 절차가 남았기 때문에 기재부 발표가 확정안은 아니다. 그러나 정부가 각 분야별로 재정을 어떻게 운용할지의 가이드라인을 내보인 만큼, 농업분야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시각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때문에 농업·농민단체들이 현 정부에 ‘농업 홀대’, ‘농업계 패싱’이라며 강력하게 비판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른다.

전국 최대 농민단체인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는 “기재부의 노골적인 농업계의 무시”라며 “농촌 현장에서 문재인 정부가 공헌했던 농정개혁이 허울뿐이라는 비판이 꼬리를 물고 있다”며 비난했다.

축산관련단체협의회도 “문재인 대통령은 ‘사람 중심의 농정체계 마련’을 강조했지만, 이번 농림수산식품 분야 예산 편성은 이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처사”라며 예산 삭감에 깊은 우려를 표했다.

‘농업계 패싱’이 비단 예산만의 일은 아니다. 문재인 정부의 농정 인사에 대한 실망감도 크다.

초대 농정 수장으로 임명된 김영록 전 농식품부 장관은 임기 8개월 만에 사퇴하고 전라남도지사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 5개월 만에 이개호 장관이 취임했으나 당시 청문회에서 내년 4월 총선에 출마한다고 밝힌 바 있다. 현역의원인 이 장관의 총선 출마시기를 고려하면 사실상 올 연말까지를 임기로 볼 수 있다.

장관은 물론 신정훈 청와대 초대 농어업비서관은 임기 8개월 만에, 후임인 최재관 비서관도 1년을 못 채우고 자리를 떠났다. “좀 할 만하다 싶으면 도망가서 ‘패싱’ 아니냐”라는 자조 섞인 농업계 관계자 얘기에 쓴 웃음만 지었을 뿐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공약을 통해 “농정의 틀을 바꾸고, 지속가능한 농업을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3년차인 지금의 농정은 예산과 인사만 보더라도 당시의 공언(公言)이 공언(空言)으로 끝날 가능성도 충분하다. 집권 전반부를 지나 반환점을 도는 현 정부의 농정이 실망보다는 기대를 품을 수 있도록 해주길 바란다.

parkse@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