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전국시대 위나라 영공(靈公)에게 미자하(彌子瑕)라는 남자 친구가 있었다. 영공은 젊은 미자하의 일거수일투족을 마음에 들어 했는데, 미자하가 복숭아를 하나 먹다가 절반을 영공에게 주자 영공은 미자하의 마음이 지극하다며 기뻐하며 받아먹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미자하가 늙자 영공의 사랑도 바뀌었고, 미자하가 사소한 잘못을 저지르자 위왕은 노해 “저놈은 본시부터 성질이 좋지 못한 고얀 놈이다. 언젠가 자기가 먹던 복숭아를 감히 과인더러 먹으라고 준적도 있었느니라. 저 무례한 놈을 당장 끌어내다 목을 베어라”라고 하며 죄를 묻고 내쫓아버렸다
여도지죄 ‘餘桃之罪-먹다 남은 복숭아의 죄’라는 고사성어의 바탕이 된 이 이야기를 한비자는 세난(說難)편에서 ‘사람이 바뀐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사건이 다른 것도 아닌데 어찌 상벌이 다를 수 있느냐’고 한탄하면서 이 같은 모순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바로 법치라고 주장했다.
2018년 6월 박상기 법무부장관과 김부겸 행정안전부장관이 검·경 수사권 조정 합의문에 서명한 이후 지지부진하던 수사권 조정은 2019년 4월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여야 4당이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을 패스트트랙에 올렸다. 2019년 5월 문무일 검찰총장은 검·경 수사권 조정에 사실상 반기를 들었고 국민들마저 검찰 편을 들기에는 정치검찰의 폐단이 너무 컸었고, 경찰 편을 들기에는 경찰의 부실수사와 부패사례의 우려로 수사권 조정논의는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조직 이기주의에 의한 것이라는 매우 냉소적인 시각을 보내고 있다.
검찰이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수사권과 기소권이라는 막강한 권력을 동시에 행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실상 경찰 스스로의 책임이 크다는 것을 아는 국민은 실상 얼마 되지 않아 보인다. 이에 관해서는 김병로 대법원장이 제헌의원일 때 한 발언과 1954년 형사소송법 제정 속기록에서 살펴볼 수 있는데, 당시에는 경찰이 무소불위 권력을 휘두르면서 부패했고, 인권마저 극심하게 침해돼 막강한 경찰의 권한을 제한하기 위한 방편으로 검찰에 수사권이라는 권한을 몰아주게 된 것이다.
법치주의는 ‘여도지죄’의 고사처럼 인치(人治)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같은 것을 다르게, 다른 것을 같게’라는 모순을 줄이기 위한 것으로, 법치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견제와 균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러한 의미에서 검찰개혁을 위해서 ‘수사는 경찰, 기소는 검찰’로 수사권을 조정해 두 권력기관이 견제와 균형을 통해 발전을 도모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작금의 수사권 조정 논의는 검찰의 막강한 권한 제한에 집중돼 있을 뿐 상대적으로 경찰에 대한 통제방안에 대한 논의는 미흡해 지금보다 국민을 더 쉽게 수사하고 더 쉽게 구속할 수 있게 만드는 방향이 되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수사권조정 문제는 검찰개혁의 문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으므로 단순히 검찰이 가지고 있는 수사권을 경찰이라는 또 다른 권력기관에 분배하는 문제가 아니라 분배된 수사권을 공정하게 행사할 수 있는 방안과 수사권을 가진 기관이 수사만능주의에 빠지지 않도록 통제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인권보장이라는 궁극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함이므로, 수사권조정의 방안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확보와 동시에 경찰이 수사권을 행사할 경우 어떠한 방법으로 효율적으로 통제하고 제어해 인권을 보호할 수 있을지에 집중돼야 한다.
수사권조정의 문제는 패스트트랙에 올라가 있으므로 김대중 정부부터 20여년간 끌어온 논쟁에 종지부를 찍을 가능성이 그 어느때 보다 높다. 다만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 된다’라는 말이 있듯이 수사권 조정의 문제를 법치주의 수호와 인권보호라는 철학과 역사에 바탕을 두지 않고 단순히 권한 배분의 문제로만 접근한다면, 이 지리한 논쟁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발생할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