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김치·와인' 계열사에 강매하고 '사익 챙긴' 태광 총수일가
'불량김치·와인' 계열사에 강매하고 '사익 챙긴' 태광 총수일가
  • 장민제 기자
  • 승인 2019.06.17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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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위원회, 태광그룹 계열사와 총수일가 검찰에 고발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이미지=연합뉴스)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이미지=연합뉴스)

태광그룹과 총수일가가 조직적 사익편취 행위로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로부터 고소를 당했다. 총수일가 소유 회사가 판매하는 '김치'와 '와인'을 그룹계열사에 고가로 떠넘기면서 수십억원의 부당이득을 총수일가에 제공했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김치의 경우 시중에 판매되는 제품보다 2~3배나 가격이 높았지만, 식품위생법 기준까지 위반하며 생산된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위는 17일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과 김기유 그룹 경영기획실장을 비롯해 태광산업, 흥국생명 등 19개 계열사 법인에 시정명령과 21억80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검찰에 고발키로 했다고 밝혔다.

공정위 조사결과에 따르면 태광그룹 계열사들은 2014년 상반기부터 2016년 상반기까지 휘슬링락 골프클럽(CC)으로부터 총 512.6톤의 김치를 95억5000만원에 구매했다.

김기유 실장은 휘슬링락CC의 김치를 10kg당 19만원으로 결정하고, 각 계열사에 구매수량까지 할당해 구매지시를 내렸다. 이에 계열사들은 휘슬링락CC의 김치를 회사비용으로 구매해 직원들에게 '급여' 명목으로 지급했다. 일부 계열사들은 김치구매 비용이 회사 손익에 반영되지 않토록 사내근로복지기금까지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내복지기금은 근로복지기본법에 따라 기업의 세전 순이익 일부를 재원으로 설립된다. 근로자 재산형성 지원, 장학금, 생활원조 등 지출용도가 엄격히 제한 돼 있다.

또 2015년 7월부턴 계열사 운영 온라인 쇼핑몰 내에 직원전용 사이트 '태광몰'을 구축해, 김치구매 포인트를 지급하는 방식도 동원됐다. 이들은 임직원들에게 김치구매에만 사용할 수 있는 포인트 19만점을 지급하고, 별도 동의 없이 임직원의 주소를 휘슬링락CC에 제공했다. 이어 휘슬링락CC가 김치를 모두 배송하면 김치포인트 19만점을 차감했고, 각 계열사들은 휘슬링락CC에 금원을 일괄지급했다.

특히 휘슬링락CC가 제조한 김치의 가격은 투입재료, 생산, 유통방식 등을 고려하면 시중에 판매되는 김치보다 3~4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CJ '비비고' 김치의 경우 배추김치는 ㎏에 6500원, 알타리무김치는 7600원에 불과하다. 또 휘슬링락CC는 김치제조·판매와 관련해 식품위생법 위반혐의로 춘천시로부터 과태료 와 과징금을 부과받았고, 당시 실무책임자는 형사고발로 재판을 진행중이다.

총수일가 업체가 현행법까지 위반하며 생산한 김치를 태광그룹 계열사에 고가로 판매하면서, 총수일가는 부당이득을 챙긴 것이다.

공정위는 "2013년 5월 휘슬링락CC가 총수일가 100% 소유회사인 티시스에 합병돼 사업부로 편입되면서, 티시스 전체의 실적까지 악화시키는 상황을 초래했다"며 "복수의 총수일가 회사에서 대표를 맡던 김기유 실장이 이호진 전 회장의 지시·관여 아래 김치를 제조해 계열사에 고가로 판매하기로 계획했다"고 설명했다.

또 태광그룹 계열사들은 2014년 하반기부터 2016년 9월까지 메르뱅으로부터 총 46억원의 와인을 구매했다. 와인 소매 유통사업체인 메르뱅은 2008년 총수일가가 100% 출자해 설립한 회사다.

태광그룹 경영기획실은 2014년 7월경 ‘그룹 시너지’ 제고를 위해 계열사간 내부거래의 확대를 도모하면서 계열사에 선물 제공사안 발생시 메르뱅 와인을 적극 활용토록 했다. 이어 같은해 8월 메르뱅 와인을 임직원 명절(설, 추석) 선물로 지급할 것을 각 계열사에 지시했다.

계열사들은 즉시 임직원 선물지급기준을 개정했고, 복리후생비 등 회사비용을 들여 메르뱅 와인 구매해 임직원 등에게 지급했다. 일부 계열사에선 김치구매와 마찬가지로 사내근로복지기금을 와인 구매에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위는 "태광 전계열사들은 와인 가격 등 거래조건에 대한 합리적 고려나 다른 사업자와 비교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며 "와인 유통시장에는 500여개 업체가 경쟁하고 있어 대안이 많지만, 계열사들은 경영기획실 지시라는 점 때문에 메르뱅이 제시하는 가격조건을 그대로 받아들였다"고 지적했다.

공정위는 당시 행위로 태광그룹 총수일가가 얻은 이득이 최소 33억원 이상일 것으로 내다봤다. 김치 판매로 휘슬링락CC가 얻은 이득 25억5000만원과 와인으로 메르뱅이 얻은 이익 7억5000만원을 총수일가에 배당, 급여 등으로 지급됐다는 뜻이다.

공정위 측은 "이 사건은 그룹 계열사가 동일인을 정점으로 일사불란한 지휘체계 하에 총수일가의 부당이득에 동원된 사례"라며 "엄중 제재 등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jangstag@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