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대통령상 시스템도 무력화시킨 '안전불감증'
[기자수첩] 대통령상 시스템도 무력화시킨 '안전불감증'
  • 천동환 기자
  • 승인 2019.06.16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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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어떤지 모르겠다. 기자가 초·중·고, 심지어 대학에서 공부할 때도 화재 경보가 울렸을 때 대피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학생들은 물론이고 교사나 교수도 마찬가지다. 경보가 울린 순간 사람들은 '또 잘 못 울렸나? 곧 꺼지겠지'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화재가 아닌 상황에서 오작동하는 경우가 많았던 경보기는 이미 '양치기 소년'이 돼 있었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사람들은 불이나 연기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지 않는 이상 아무리 화재 경보가 울려도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았다.

화재 경보를 위험 신호가 아닌 고장 신호로 받아들이는 인식은 보이지 않게 '선(先) 대피, 후(後) 고장 확인'이 아닌 '선 고장 확인, 후 대피' 매뉴얼을 만들고 있었다.

지금은 어떨까? 학교가 얼마나 변했는지는 기자도 잘 모른다. 다만, 모순된 안전 경험을 온몸으로 익힌 세대들이 주로 활동하는 사회에서는 여전히 '선 대피'를 실천하거나 유도하지 않는다.

지난 12일 오후 2시58분쯤 부산철도국제기술산업전이 열리고 있던 부산 벡스코에서의 짧은 해프닝은 이를 잘 보여준다.

행사 취재차 찾았던 그곳에서 요란한 경보음과 함께 "화재가 발생했으니 대피하라"는 안내 방송이 한 차례 나왔다.

철도기술산업전은 역대 최대 규모로 준비됐고, 오거돈 부산시장과 김경욱 국토부 제2차관 등 VIP 들이 오전 개막 행사에 대거 참석하기도 했다. 또, 많은 외국 기관 관계자와 기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화재 발생 방송을 듣고 대피를 유도하거나 대피하는 사람은 없었다.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것이 방송을 들은 사람들이 보인 가장 적극적인 행동이었다. 전혀 신경 쓰지 않고, 하던 일을 계속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이런 사람들을 보며 한 젊은 남성이 실소 섞인 목소리로 내뱉은 "와~ 안전불감증"이라는 말은 당시 상황을 한마디로 요약하고 있었다.

경보가 울렸음에도 실제 불길을 보지 못한 것은 다행이다. 어디선가 작은 화재가 발생했다가 금방 진화된 것인지, 경보 시스템에 오류가 발생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한 차례 울리고 끝난 경보를 너무 확대 해석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벡스코가 행사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전달한 마지막 메시지는 분명 "대피하라"였다. 이후 화재 진압이나 시스템 오류 여부를 설명하는 방송은 없었다.

여기서도 화재 경보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양치기 소년'일 뿐이었다.

공무원과 정치인, 기업인, 연구원, 언론인 등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지식인들이 대거 모인 장소에서 일어난 짧지만,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벡스코는 지난해 열린 대한민국 안전대상에서 '대통령상'을 받았다. 안전에 관해서는 우리나라에서 뒤처지지 않는 시스템을 갖춘 곳이라는 얘기다. 이런 최상급 시스템마저 무력화시키는 안전 의식. 어떻게 해야 바꿀 수 있을까?

cdh4508@shina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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