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청와대 국민청원은 우리의 얼굴
[기자수첩] 청와대 국민청원은 우리의 얼굴
  • 이소현 기자
  • 승인 2019.06.11 16: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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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이 혼란의 장으로 변질되고 있다.

공수처법 패스트트랙을 계기로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을 해산하라는 청원이 등장하면서부터다. 더불어 문재인 대통령의 탄핵을 요구하는 청원도 나왔다. 

두 청원은 현재 20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 청와대의 답변을 기다리는 상황이다.

'북한에 쌀만 보내지 말고 민주당 의원들도 같이 보내자'라는 청원도 3만5000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 정치부문 동의 수 최다에 올랐다.

이같은 청원은 정부와 정당의 역할에 대한 회의가 극에 달했다는 것을 방증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청원이 정치적 프레임을 씌우고 정치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는 도구로 이용되는 것처럼 보인다. 

색깔 혐오와 비난이 난무하는 말의 무덤이 된 것이다.

숙의민주주의에 대한 의식 부재가 얼마나 큰지를 국민 스스로 여실히 드러낸 셈이다.

지금까지 공론화-사회적 합의 도출-정책제안으로 이어진 국민청원 게시판의 순기능은 나아가 숙의민주주의의 실현 가능성도 시사했다.

국민청원을 통해 음주운전법을 강화하는 '윤창호법'을 탄생시켰고, 불법촬영물 유포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을 개정시켰다. 

주권자로서 국민이 직접 공론의 장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물론 청원이 20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점, 정책 실현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수는 없다는 점은 대의민주주의의 한계점이다.

정치 주권의 타자성에서 오는 괴리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국민이 직접 청원을 선별하고 정책을 제안하는 등 국민 주체적인 제도가 뒷받침돼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성숙한 시민의식을 가지고 의견을 개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건전한 비판을 자유롭게 주고받을 때 국민은 스스로 가치와 수준을 높일 수 있다.

청원 게시판이 단순한 여론 집합소가 아닌 정책 마련의 장이 되길 바란다.

sohyun@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