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작은 관심이 ‘아프리카돼지열병’ 막는다
[기자수첩] 작은 관심이 ‘아프리카돼지열병’ 막는다
  • 박성은 기자
  • 승인 2019.06.09 10: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감염되면 ‘치사율 100%’에 이를 정도로 치명적인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한반도 상륙을 공식화한지 열흘 정도 지났다. 지난달 30일 북한 정부가 세계동물보건기구(OIE)에 발생 보고를 한 사실이 확인되면서 정부와 양돈업계는 ‘초비상’ 상태다. 우리와 바로 국경이 맞닿아 언제든 야생멧돼지 또는 감염된 돼지 사체를 통해 ASF가 국내로 확산될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기 때문이다.

북한에서의 ASF 신고시점은 그보다 일주일가량 앞선 지난달 23일이다. 9일 기준으로 이미 20여일이 지났다. 북한은 상대적으로 우리나라보다 방역체계가 상당히 열악한 편이다. 개인이 사육하는 ‘개인부업축산’ 비중이 높아 남은 음식물의 급여가 잦고 정부 통제가 어렵다고 한다.

‘노동신문’에서도 ASF 관련 기사가 잇달아 보도됐는데 첫 발생지인 자강도뿐만 아니라 황해도에서도 ASF가 발생했고, 평안북도 신의주 등 일부 지역에서 돼지고기 유통·판매가 금지됐다.

이런 상황 탓인지 이낙연 국무총리가 최근 세 번에 걸쳐 접경지역 방역현장을 찾아 “북한이 발병상황에 대해 모든 것을 투명하게 OIE에 신고했다고 볼 수 없다”며 “ASF에 감염된 멧돼지가 이미 개성까지 왔다고 봐야 한다”고 말한 대목은 그만큼 현 상황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개성은 판문점에서 겨우 8킬로미터(㎞) 정도의 거리밖에 되지 않는다.

10여 년 전인 구제역 대란 때 300만두에 가까운 돼지가 살처분됐다. 당시 전체 사육마릿수의 30%에 달하는 수치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의 경우 예방백신은 물론 치료제가 없다. 북한뿐만 아니라 중국·베트남 등 우리와 인적·물적 교류가 활발한 국가에서 ASF가 급속히 확산된 지 오래다. 여행 성수기가 다가오면서 이들 지역에서 불법 반입된 축산물을 통해 전파될 위험도 무척 크다. ASF의 위험에 전방위적으로 노출돼 양돈업계가 불안을 넘어 위기와 공포에 빠진 상황이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은 양돈업계에만 국한된 일이 아니다. 삼겹살로 대표되는 돼지고기는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식재료이자 우리 국민이 가장 사랑하는 외식메뉴다. 한국인 1인당 육류 소비의 절반 이상을 돼지고기가 차지할 정도다. 만에 하나 ASF가 국내에 유입돼 돼지고기 생산기반이 무너지면 그 피해는 소비자까지 미칠 수밖에 없다.

구제역 대란 당시 돼지고기 가격은 40% 이상 급등해 장바구니 물가에 많은 부담을 준 바 있다.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인해 ‘삼겹살에 소주 한 잔’이라는 얘기를 쉽게 꺼낼 수 없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아프리카돼지열병 차단에 정부와 양돈농가는 물론 전 국민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중국·베트남 등 발생국 여행을 자제하고, 축산가공품을 불법으로 가져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등산할 때 먹다 남은 소시지 등 음식물을 무심코 버려서도 안 된다.

사소할 것 같지만 이러한 관심과 주의가 아프리카돼지열병 차단에 가장 큰 ‘울타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parkse@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