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 국회문턱 못넘고 시민단체 ‘폐기’ 주장…바이오헬스 ‘성장판’ 닫힐 수도
[창간특집] 국회문턱 못넘고 시민단체 ‘폐기’ 주장…바이오헬스 ‘성장판’ 닫힐 수도
  • 동지훈 기자
  • 승인 2019.06.08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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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사위 상정됐으나 인보사 사태로 법안심사 소위원회 회부
미국 등 해외선 이미 시행…바이오업계 경쟁력 하락 우려
(사진=신아일보DB)
(사진=신아일보DB)

우리나라는 첨단재생의료법안(첨생법)이 국회에 제출됐으나 무조건적인 규제 완화가 국민안전 위협으로 돌아온다는 논리로 국회 본회의 상정이 요원한 상황이다. 반면 첨단재생의료와 첨단 바이오의약품 기술을 활용한 의약품 시장이 성장하자 미국과 유럽 등 의료 선진국은 관련법을 제정해 시행하고 있다. 본지는 첨생법으로 바이오산업 전반에 기대되는 효과를 살펴보고, 법안 통과 지연에 따른 글로벌 경쟁력 하락 우려를 짚어본다. <편집자주>

정부가 오는 2025년까지 혁신신약과 의료기기 개발 등을 위한 연구개발(R&D) 투자에 연간 4조원 이상을 투자하는 등 바이오헬스 산업을 글로벌 수준으로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희귀‧난치성 질환을 앓는 환자들의 치료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법안은 정작 국회에 발이 묶여 있는 상황이다. 해당 법안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상정돼 표결을 앞두고 있었으나, ‘인보사 사태’ 이후 별다른 이유 없이 법안심사 소위원회로 회부되자 바이오업계에선 글로벌 경쟁력 하락을 우려하고 있다.

◇희귀‧난치 질환자 기대감↑…산업 발전에도 기여

6일 국회에 따르면 첨단재생의료법 및 첨단바이오의약품 안전‧지원에 관한 법률안(첨생법)은 현재 법안심사 제2소위원회에 회부돼 법제사법위원회 상정을 기다리고 있다.

첨생법은 지난 2016년 김승희, 전혜숙 의원 등의 발의안과 2017년 정춘숙 의원안, 지난해 이명수 의원안이 통합‧수정된 법안이다.

첨생법에서 정의하는 첨단재생의료는 사람의 신체 구조나 기능을 재생·회복·형성하거나 질병을 치료·예방하기 위해 인체세포를 쓰는 치료를 말한다. 첨단 바이오의약품은 세포 배양이나 유전자 재조합 등을 이용해 사람이나 동물의 단백질·호르몬으로 만든 바이오의약품이다.

해당 법안은 우선심사, 사전심사, 조건부 허가 등을 통해 희귀‧난치 질환자용 신약에 패스트트랙을 적용하는 방안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예들 들어 임상 1~2상에서 암세포 치료 효과가 확인된 치료제의 3상을 면제해 말기 환자가 복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법안에는 첨단재생의료 범위를 세포치료, 유전자 치료, 조직공학치료 등으로 명시하고, 이에 대한 안전성 확보 체계와 실용화 방안을 마련하는 내용도 담겨있다.

바이오의약품과 관련해선 세포치료제, 유전자치료제, 조직공학제제, 첨단융복합제제 등으로 정의하고 이에 대한 제품화 지원을 위한 사항 등을 규정했다.

첨생법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개발부터 상용화까지 12~15년가량 소요됐던 기간이 9~11년으로 단축될 것으로 기대된다. 환자 입장에선 신약으로 새로운 치료 효과를 기대할 수 있고, 바이오업체 입장에선 제품 출시를 앞당길 수 있는 셈이 된다.

여기에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에 가져다 줄 긍정적인 영향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입장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한 관계자는 “안전성과 관련한 규제만 제대로 작동한다면 환자와 바이오업체뿐만 아니라 우리 산업계의 발전을 이끌어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시민단체 인보사 사태 이후 “국민 안전 위협” 첨생법 폐기 주장

첨생법은 업계와 관련부처의 기대 속에 당초 무난하게 법사위와 본회의를 통과할 것이란 예상과 달리, 국회에서 잠들어 있는 상태다. 첨단재생의료 임상연구를 실시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부분에서 ‘연구 대상자 정의’가 모호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에 더해 ‘인보사 사태’ 이후 첨단 바이오의약품이 오남용 되면 국민 안전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는 우려도 첨생법 계류에 한몫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인보사의 제조‧판매가 중지된 데 이어 품목허가가 취소되자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첨생법 폐기 주장도 들려오고 있다. 두 차례의 식약처 심의를 거쳐 판매가 허가된 바이오의약품의 성분이 바뀐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는데 규제를 완화하면 국민 안전이 우려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게 이들의 입장이다.

이와 관련, 식약처는 R&D 단계부터 허가, 생산, 사용에 이르는 전주기 안전관리체계를 강화해 바이오의약품의 신뢰성을 확보하겠다는 구상이다.

이의경 식약처장은 “첨생법의 핵심은 인체 세포 채취과정에서 세포처리시설, 세포처리관리를 철저히 하는 내용”이라면서 “첨생법이 입법화돼야 인보사 문제와 같은 사태를 방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유럽 등 의약 선진국에선 이미 시행 중

해외에선 이미 첨생법과 유사한 법률을 제정해 유전자치료제 등 첨단 바이오의약품을 별도로 관리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식품의약품화장품법에 따라 첨단 바이오의약품을 관리하고, 오염에 취약한 바이오의약품과 첨단재생치료제에는 각각 공중보건법과 ‘21세기 치유법’을 추가로 적용하고 있다.

이 가운데 ‘21세기 치유법’은 중증질환 또는 희귀‧난치 질환자를 위해 첨단재생치료제를 신속하게 인허가하는 내용이 포함돼 첨생법과 유사한 모습을 보인다.

유럽 또한 첨단의료제품에 대한 별도 규정을 두고 있으며, 일본 역시 세포와 유전자치료제를 ‘첨단재생의료 등 제품’으로 정의하고 관련법에서 따로 분류해 관리하고 있다.

이들 국가의 재생의료법은 ‘투 트랙’으로 볼 수 있다. 첨단 바이오의약품의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는 법안을 활용하는 한편, 빠르게 출시돼 환자의 치료 효과가 예측되는 경우 조건부로 인허가 과정을 신속 화하는 것이다.

특히 세포치료제의 경우 국내에선 임상 3상을 완료한 뒤에도 부작용을 검증하는 임상 4상까지 거쳐야 해 일부 환자가 국내산 치료제를 해외에서 구입해 사용하기도 한다.

바이오업계의 한 관계자는 “해외 의료 선진국만큼의 경쟁력을 확보하자고 하면서 글로벌스탠다드에 맞춘 법안을 통과시키지 못하는 실정”이라면서 “업체나 업계의 발전은 차치하고 환자를 위해서라도 법안이 빠른 시점에 통과돼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 바이오산업 경쟁력 하락 위기

첨생법 통과가 지연되자 국내 바이오산업의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실제 미국 과학전문매체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지난해 한국의 바이오 분야 경쟁력 순위는 54개국 중 26위였다.

이는 앞선 조사에 비해 두 단계 떨어진 순위이며 2009년 15위, 2012년 22위, 2014년 23위, 2016년 24위에 이어 네 차례 연속 하락한 기록이다.

이에 대해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은 “한국은 바이오기술을 활용해 제조된 식품에 대한 수용도가 낮은 편”이라면서 “바이오기술의 의료적 활용도 원활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국내에서도 같은 맥락의 우려를 내놨다. 오기환 한국바이오협회 상무는 “국내에서 첨단 바이오의약품 시장이 성장하기 시작하는 시기”라면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신속한 인허가 절차와 기업지원 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지난해 기준으로 가장 많이 판매된 의약품 10개 중 2개가 첨단 바이오의약품인 면역세포지료제인데 미국이나 유럽 등 다른 국가처럼 이들 제품을 별도 관리하는 기준이 없다”며 “규제의 모호성을 개선하기 위해서라도 첨생법은 조속히 통과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jeehoon@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