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까지만 해도 커피 자판기만큼이나 흔한 거리풍경에 담배자판기라는 것이 있었다.
당시 일부 고등학생은 버젓이 담배자판기를 애용했고, 중학생들 중에서도 소위 ‘노는 형’들이 새벽이나 밤 시간대에 눈치 보지 않고 담배 구입을 가능케 해준 것이 바로 담배자판기였다. 정확한 통계는 알 수 없지만 당시 담배자판기 등장이 청소년들의 흡연 입문을 부추겼을 것은 분명하다. 이제 중년이 된 그들 중에는 매년 되돌이표를 찍는 작심삼일에도 여전히 금연하지 못하는 애연가가 허다할 것이다.
최근 미국 판매 1위 전자담배의 한국 상륙이 화제다. 이름도 깜찍한 ‘쥴(JUUL)’이다. 얼마나 인기가 좋았는지 ‘담배를 피운다’는 의미로 ‘쥴링(Juuling)’이란 신조어까지 생겼다고 한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에 따르면 2017년 미국 고교생 전자담배 흡연율은 11.7%에서 1년 뒤 20.8%로 거의 두 배나 급증했다. 또 중학생 전자담배 흡연율도 3.3%에서 4.9%로 증가해 미국에서 전자담배를 흡연하는 중고교생은 360여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련된 디자인에 다양한 과일 향 때문에 건강에 해롭다는 인식도 덜 갖게 되는 ‘쥴’이 호기심 많은 청소년들의 흡연율을 높였다는 것이 미국 보건당국의 시각이다.
세계보건기구인 WHO는 담배제조·수입업자가 제품 성분과 배출물 정보를 정부 당국에 제공해 정부는 이를 공개하도록 권고하고 있고, 미국과 유럽연합은 성분 및 독성, 의존성 자료 제출을 의무화 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관련법이 통과되지 않아 타르와 니코틴 함량만을 표시하고 있다.
쥴의 국내 출시를 앞두고 식약처는 유해성분 정보제공을 위해 자체 평가법을 마련해 액상형 전자담배의 20개 성분을 측정하겠다고 나섰다. 또 건복지부는 편의점 등 담배소매점에서 청소년에 대한 담배·전자담배 판매를 집중 점검·단속하고, 온라인상에서 불법으로 담배를 판촉하는 행위에 대한 단속도 강화할 방침이다. 하지만 국회에서는 WHO 권고안이 포함된 담배사업법·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이 논의되고 있으나 관할 부처 문제부터 난항을 격는 등 본회의 통과는 요원한 상황이다.
애연가들은 혐연권에 맞서 흡연권을 보장하라며 행복추구권을 들먹여봤지만 이미 헌법재판소는 2004년, 생명권 보호라는 더 큰 국민권익을 들어 흡연권의 행복추구권에 종지부를 찍은 지 오래다. 스무 살 전후 담배자판기를 통해 쉽게 담배를 접했던 중년의 애연가들은 니코틴에 중독된 의지박약자로 낙인찍혀가면서도 매번 금연에 실패하고 있다.
쥴과 같이 소형화되고 청소년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히 예쁜 디자인으로 무장한 전자 담배들은 청소년 흡연자들을 더 많이 만들어 낼 것이고 이들은 계속해서 애연가로 남을 가능성이 큰 만큼 정부와 국회는 사후약방문이 되지 않도록 실효성 있는 충분한 대책을 하루 빨리 마련해야 한다.
[신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