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사람 없는 혁신도시
[기자수첩] 사람 없는 혁신도시
  • 천동환 기자
  • 승인 2019.05.09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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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도시 정책에 혁신이 필요해 보인다. 전국 혁신도시 중 상당수가 여전히 지독한 사람 가뭄을 겪고 있고, 이전 기관들은 새 보금자리에 제대로 녹아들지 못하고 있다.

도시와 인프라는 그럴듯하게 조성돼 있지만 이를 이용하는 사람은 턱없이 부족하다. 새로 지은 아파트와 상가 건물들은 입주자를 받지 못한 채 낡아가고 있다.

기자가 최근 가 본 경북 김천혁신도시는 이런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아침, 점심, 저녁 할 것 없이 길에 다니는 사람이 없다.

도로공사와 교통안전공단, 건설관리공사 등 12개 기관이 이전해 있고, 많은 아파트와 상가들이 들어서 있지만, 웬일인지 사람이 없다.

사람이 없다 보니 몇 년째 비어있는 상가가 수두룩하고, 영업 중이던 가게가 문을 닫는 경우도 허다하다.

공공기관 바로 앞에 있는 상가들은 사정이 좀 나을까 싶지만, 상황은 마찬가지다.

기관 직원들은 식사를 주로 구내식당에서 해결하기 때문에 점심시간에도 주변 식당이 북적이는 모습을 보기 어렵다.

여전히 수도권으로 출퇴근하는 직원들이 적잖고, 혁신도시를 벗어나 구도심에 마련한 관사를 이용하는 이들도 있다.

본사 건물은 혁신도시로 이전했지만, 국회나 정부가 주재하는 각종 행사나 회의는 여전히 서울이나 세종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출장도 잦다.

화상회의는 영화에나 나오는 것일 뿐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자타공인 IT 강국의 정부와 공공기관들이 일하는 방식은 여전히 혁신과는 거리가 멀다.

근본적으로 공공기관 종사자들이 지역과 함께 살아가기에 어려운 구조다. 정도에 차이는 있지만, 경남 진주혁신도시나 전북 전주혁신도시, 전남 나주혁신도시 등도 사정은 비슷하다.

정부가 지역별 특성을 살려 혁신도시 발전을 꾀한다는 취지에서 '혁신도시 시즌2'를 가동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지역 특화산업을 육성한다는 방향성은 공공기관 위주의 혁신도시에 민간기업을 끌어들인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다.

그러나 공공기관 이전 사례가 보여주듯 사람 가뭄을 근본적으로 해소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또다시 겉모습만 바꾸는 인위적 변화에 그치지 않을까 우려된다.

혁신도시를 살리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혁신도시에서 일하며 살고 싶도록 해야 한다. 말로만 5G 시대라고 떠들지 말고, 업무와 생활에서 지역적 제약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물리적 도시 건설과 공공기관 이전은 반강제적으로 가능했을지 모르지만, 이런 방법으로는 사람을 모으는 데 한계가 있다.

정부의 혁신도시 정책에 근본적인 혁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지금 혁신도시는 '팥 빠진 붕어빵'과 다를 게 없다.

cdh4508@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