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한국 쿠팡'이 '미국 쿠팡'이었다면
[데스크 칼럼] '한국 쿠팡'이 '미국 쿠팡'이었다면
  • 나원재 기자
  • 승인 2019.05.09 16: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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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오해가 풀릴 가능성에 배팅했습니다. 욕심을 부려선 안 되고, 균형 있는 시각을 유지하면서 장기전으로 가야 성공할 확률이 높아집니다.”

국내서 꽤 높은 수익률을 자랑하는 한 투자자문사 대표를 2년여 전에 만났을 당시 그는 “최고경영자(CEO)의 일관성 있는 정책과 선제적인 투자가 필요하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최근 한창인 기업 실적 시즌을 살피다 문득 그가 했던 말들을 떠올려봤다. 일부 외신기자들은 매년 국내 기업들의 실적발표 시기가 되면 국내 언론과 해외 언론의 온도차에 놀라는 경우가 더러 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해외시장에선 기업의 성장을 점치는 가치투자에 초점을 맞추지만 국내는 기업의 성장성보다 손익에 초점을 맞추는 분위에 익숙하지 않은 까닭으로 풀이된다.

그도 그럴 것이 해외시장의 경우, 실제 세계시장을 주름잡는 기업들은 처음부터 손익이 아닌 가치투자에 초점을 맞춰 성장해 왔다.

미국의 차량 공유 업체 우버 상장에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우버는 공모가 범위를 44달러~50달러로 제시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기업공개(IPO) 자금조달 범위는 80억~90억달러(최대 10조4400억원)로, 기업가치는 약 800억~900억달러(최대 104조3900억원)로 추정된다.

우버의 상장과정을 보고 미국 IPO 시장은 연일 관심이 뜨겁다. 우버는 올해 1분기 약 10억달러의 적자를 기록하는 등 엄청난 규모의 적자를 기록했지만 해외시장은 우버의 성장성에 초점을 맞췄다.

미국 정보통신기술(IT) 매체 테크크런치(TechCrunch)는 최근 ‘유니콘 기업들은 수익을 못 내지만 월가는 이를 신경 쓰지 않는다’는 기사에서 최근 상장을 통해 엄청난 공모금액을 이끌어낸 리프트(Lyft)의 사례를 예로 들고 있다.

리프트는 지난 2018년에 9억달러(1조원 가량)의 손실을 냈는데, 이는 미국에서 상장한 스타트업 기업들 중 제일가는 규모(the biggest loser)다. 하지만 기사는 리프트가 작년에 기록한 매출 22억달러(약 2조5000억원)는 비상장 회사 중 최대 규모며, 같은 업계에서는 페이스북과 구글 정도만 상위에 있다는 내용을 덧붙였다.

결국 투자자들은 1조원의 손실보다는 2조5000억원의 매출 규모와 업계대비 성장 속도에 더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2010년 이래 벤처 캐피털의 투자를 받아 상장한 10억달러 이상 가치를 지닌 100여개 기업 중 64%는 적자기업이었고, 2018년 나스닥 상장 기업의 85%는 적자로 알려지기도 했다.

심지어 글로벌 투자분석 업체 피츠북(PitchBook)은 최근 연구에서 적자 스타트업들의 주식 성적이 수익을 내는 기업들보다 더 좋았다고 밝혔다. 월가는 성장가능성에 베팅하고, 수익은 크게 신경 쓰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테크크런치의 경우, 아마존이 1997년에 적자 기업으로 상장했을 당시에 베팅했던 초기 투자자들은 지금 매우 행복할 것이라는 코멘트도 덧붙였다.

2000년대 초반 미국의 ‘아마존’ 역시 대규모 적자를 감수하면서 계속해서 투자를 진행했다. 현재 아마존은 미국 온라인 커머스 시장에서 절반에 가까운 시장성을 차지하는 의심의 여지없는 글로벌 유통공룡이 됐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핫(HOT)한 스타트업들에 눈독을 들이는 투자자들은 기업의 적자에 둔감하다는 사실은 더 이상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라는 말마저 나오고 있다.

같은 맥락으로 국내서도 적자의 폭이 아닌 회사의 성장성을 먼저 고려한다면 글로벌 시장에서 인정받는 기업을 발굴할 수 있는 셈이다.

회사의 존속 가능성을 평가하는 데에는 물론 손익을 고려하는 게 당연하지만, 기업의 미래를 점치는 기준을 여러 가지 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일례로 국내 이(e)커머스 플랫폼 기업 쿠팡은 지난해 매출 4조4000억원보다 1조1000억원의 적자 규모에 눈길이 쏠리고 있다.

매출은 최대 기록을 달성했지만, 여전히 시장은 적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최근 쿠팡에 대해 추가 투자를 감행한 소프트뱅크 비전펀드의 행보를 바라본다면 투자 배경에 관심을 쏟을 수밖에 없다.

최초 투자를 결심한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도, 추가 투자를 결정한 소프트뱅크 비전펀드도 쿠팡의 성장 속도에서 미래를 봤을 것이란 평가가 나오기 때문이다.

우리도 아마존이나 리프트, 우버를 보는 해외 투자자들처럼 시장을 바꾸는 새로운 기업들의 등장을 위해 성장성을 지지할 필요가 있다. 기업의 가치투자를 제대로 살펴봐야 하는 시대다.

nwj@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