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아프리카돼지열병, ‘구제역·메르스 대참사’ 반복해서는 안 된다
[기자수첩] 아프리카돼지열병, ‘구제역·메르스 대참사’ 반복해서는 안 된다
  • 박성은 기자
  • 승인 2019.05.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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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보여주기식의 캠페인은 별 의미가 없어요. 앞으로 2~3개월이 고비에요. 아프리카돼지열병에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양돈산업이 무너지는 건 시간문제에요.”

양돈산업에 종사하는 관계자들과 얘기를 나눠보면 모두 ‘아프리카돼지열병(African Swine Fever, ASF)’에 대한 걱정뿐이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은 돼지에게 발병되는 제1종의 가축전염병으로 일령에 관계없이 감염되면 ‘치사율 100%’에 가까울 정도로 치명적이다. ASF는 예방백신은 물론 치료제가 아직 없다. 그렇다보니 현재로서 ‘살처분’이 유일한 대안이다.

지난해 8월 아시아 최초로 중국에서 첫 발병 신고가 접수 된 후 몽골과 베트남, 캄보디아 등으로 확산 중이다. 특히 인접국인 중국에서 ASF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8월부터 올 2월까지 100만 마리의 돼지를 살처분했다고 공식 발표했는데, 관련업계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농무부는 ASF 영향으로 중국에서 사육되는 돼지 4억4000만마리 중 25%가 넘는 1억3400만마리가 감소할 것으로 지난달 발표한 바 있다.

국내에 ASF 바이러스가 유입된다면 피해 규모는 지난 2010~2011년 발생한 ‘구제역 대란’ 그 이상이 될 것으로 양돈업계는 예상하고 있다. 당시 350만두에 가까운 돼지가 살처분됐다. 전체 사육마릿수의 30%가 넘는 수치다. 10년 가까이 지났지만 양돈업계는 아직도 후유증을 앓고 있는데, ASF라는 또 다른 ‘공포’까지 직면하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가 그간 취한 조치는 발생국 여행자제와 돼지 잔반급여 최소화 등을 ‘당부’하는 수준에 그쳤다. 종종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인천공항을 찾아 검역강화에 나선다는 캠페인만 펼쳤을 뿐이다. ASF 전파의 주 원인으로 꼽히는 야생맷돼지 관리나 돼지 잔반급여 금지 등에 대해서는 소극적인 자세를 보였고, ASF 국내 유입을 가정한 별도의 방역 매뉴얼도 없다. 정부가 ‘전시행정’, ‘수박 겉핡기식 대처’라는 지적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보다 못한 양돈 관계자들이 청와대 앞에서 1인 피켓팅을 하고, 대한한돈협회 등 생산자단체가 돼지 잔반급여 금지·불법 축산물 과태료 상향 등의 법제화를 강력하게 요청했다. 그제서야 정부는 최근 잔반돼지 금지·과태료 최대 1000만원 상향 부과 등 해당법 시행령 개정안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달 초 SNS를 통해 ASF의 국내 유입은 재앙이라며 선제적인 예방을 주문했다.

인접국인 중국에서 ASF가 발병한지 8개월 만에 정부가 이제야 행동으로 조금씩 ‘응답’하고 있다. 때늦은 감이 크지만 정부는 하루빨리 잔반급여 돼지사육을 금지하고, 국경지역의 야생멧돼지 유입을 막기 위한 철책 설치, ASF 발병국 입국자의 검역 강화 등 예방대책 수립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정부의 이번 대처에 따라 2003년 중증급성호흡증후군 사스(SARS) 예방과 5년 만에 올해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발생 제로처럼 ‘신뢰’를 얻을 수 있을지, 그렇지 않는다면 2011년 구제역 대란과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 메르스(MERS) 때처럼 골든타임을 놓친 ‘대참사’로 기록될 것이다.

parkse@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