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정치학자 배링턴 무어(B. Moor)는 그의 저서 ‘독재와 민주의 사회적 기원(The Origins of Dictatorship and Democracy)’에서 “혁명이 진정한 혁명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그 사회의 본질적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고 했다.
해방 이후 우리 현대사에 혁명이라고 칭하는 사건은 우선 4.19혁명을 들 수 있다. 4.19혁명은 이승만 독재체제에 항거해 일어난 봉기로써, 한국 사회에서 민주주의가 토착화되기 위해 비민주적인 정권은 국민의 저항에 의해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첫 번째 사례다. 마치 맹자께서 말씀하신 “군주가 군주답지 못하면 백성들의 뜻을 받들어 군주를 바꿀 수 있다”는 역성혁명의 이론을 우리 사회에서 처음으로 증명했다.
그러나 4.19혁명이 처음부터 혁명으로 인정받지는 않았다. 그래서 4.19는 한동안 학생의거로 불리웠다. 혹자는 4.19에 대해 미완성 혁명이라 칭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4.19는 이후 부마항쟁과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그리고 6.10 항쟁 등을 거치면서 민주화의 효시로서 비로소 완성된 혁명으로 공인됐다. 즉 우리 사회는 4.19 혁명을 통해 독재체제를 거부하고 민주체제를 이룩한 변혁을 가져왔다.
두 번째는 5.16 혁명이다. 5.16에 대해서는 여전히 군사쿠데타이지 혁명이 될 수 없다는 주장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그 논쟁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그러나 5.16은 한국 사회를 전통적인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변화시킨 계기가 됐다. 1950년대와 60년대 저개발국을 비롯한 제3세계에서 수없이 많은 군사 쿠데타가 일어났지만, 5.16처럼 한 나라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발전시킨 사례를 찾아 볼 수 없다. 따라서 5.16은 형식상 분명한 군사 쿠데타이지만 그 결과는 우리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킨 혁명적 사건임을 부인할 수 없다.
세 번째는 2016년 말부터 2017년 초까지 발생한 촛불혁명이다. 촛불 혁명은 권력의 사유화에 반대해 법치를 이뤄달라는 국민적 요구가 일으킨 사건이다.
촛불 혁명은 광화문 광장을 필두로 전국 방방곡곡에서 수백만의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이게 나라냐!”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반칙과 특권이 없는 사회”를 만들자는 비폭력 항거였다. 그 결과 헌정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이뤄지고, 권력을 사유화하고 남용한 장본인들이 줄줄이 법의 심판을 받고 있다.
그런데 2년이 지난 지금 촛불 혁명의 결과 우리 사회에 어떠한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촛불의 명령인 ‘반칙과 특권이 없는 사회’는 잘 이뤄지고 있는지 의문이다. 오히려 우리 사회 많은 곳에서 ‘내로남불’이라는 비아냥이 끊이지를 않고, 하다못해 대통령의 취임사대로 지켜달라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아직도 늦지 않았다.
촛불이 진정한 혁명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혁명을 통해 잡은 권력을 오로지 국민을 위해 사용하면 된다. 국민이 아닌 내편만을 위한 권력이 바로 권력의 사유화다.
정권을 잡았다고 해서 혁명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나만 옳다는 생각, 나의 행동만이 정의롭다는 사고에 매몰될 때, 혁명의 의미는 사라지게 된다.
혁명이 일어난 후 독재체제로 간 국가와 민주체제로 간 국가의 차이는 결국 혁명 이후의 권력을 누가 어떻게 사용했느냐에 결정된다는 말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