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한과 복수심 등 강력범죄 동기가 뚜렷했던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아무런 이유도 없이 폭행을 하거나 흉기를 휘두르는 등 피해자를 가리지 않는 이른바 ‘묻지마 범죄’가 확산되고 있다.
‘묻지마 범죄’는 피의자와 피해자와의 관계에 아무런 상관 관계가 존재하지 않거나, 범죄 자체에 이유가 없이 불특정의 대상을 상대로 행해지는 살인·폭행 등의 범죄행위를 지칭한다.
불특정 다수를 향한 ‘묻지마 흉기 난동’ 사건이 잇따르자 국민들 사이에선 언제 나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공포감과 함께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불특정인을 상대로 벌이는 이른바 ‘묻지마 범죄’는 어제 오늘의 일만은 아니다.
지난해 10월 대낮 인천 길거리에서 50대 조현병 환자가 60대 남성과 30대 여성을 흉기로 잇따라 찌르는가 하면 지난해 6월에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40대 남성이 포항의 한 약국에서 50대 약사와 30대 여성 종업원에게 흉기를 휘둘러 종업원이 숨지고 약사도 크게 다쳤다.
더불어 지난달 25일에는 부산 사상구의 한 커피숍에서는 A모군이 공부하고 있던 여대생의 옆구리를 흉기로 찌르기도 했으며, 이달에는 경남 진주의 한 아파트에서 40대 남성이 자신의 집에 불을 지른 뒤 대피하는 인근 주민들을 상대로 흉기를 마구 휘둘러 5명이 숨지고 13명이 다쳤다. 숨진 사람은 12세 여자 어린이 등 5명이며, 남성은 70대 노인 한명 뿐으로, 범인은 약한 사람만 골라 살해했다.
이 사건은 그 어느 때보다 흉악하고 무참했다. 불을 지르고 길목을 지키다 화마를 피해 빠져나오는 노인이나 어린이, 여성들을 겨냥하여 살상을 저질렀으니 온 국민이 공황상태에 빠질 지경이고, 피해자 대다수가 노인과 여성 등 사회적 약자에 집중돼 있는 점으로 인해 충격과 분노가 더해진다.
언제, 어디서, 누구에 의해 범죄의 표적이 될 지 알 수 없으니 시민들 사이에선 “불안해 못살겠다”는 하소연이 여기저기서 불거져 나오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가까운 한 지인은 “최근들어 매스컴을 보면 흉기 난동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며 “가까운 이웃으로부터 언제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자주 생긴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묻지마 범죄는 사회적 스트레스가 높아지면서 생긴 병리현상이다. 경제적 빈곤과 사회적 소외에 대한 스트레스가 커졌음에도 이를 적절하게 해소할 장치나 수단이 없어 범죄로 이어지는 것이다. 여기에다 사회적 경쟁에서 뒤처지면서 경제적으로 벼랑에 내몰리고 미래를 기대하지 못하게 되며 가족·친구들과도 떨어져 외톨이로 지내면서 좌절과 분노가 쌓이게 된다, 이는 곳 불특정 다수에 대한 증오로 극단적인 행동으로 나타나게 된다.
여기에 더해 범죄 동기도 정신질환적 문제, 소외 계층의 분노 표출 등 사건마다 다르고 유형도 다양해 현실적으로 해법 찾기가 쉽지 않다. 묻지마 범죄는 그 행위를 놓고 봤을 때 사회적으로 다른 범죄보다 더 심각한 양상을 보이고 있고, 피해 정도도 생명이나 신체에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비가 오기 전 우산을 준비한 사람은 비가 오더라도 당황하지 않는다. 비가 오는 중에 우산을 찾는 사람은 비에 젖은 채 당황하기 마련이다. 우산을 미리 준비하는 것은 당장은 필요 없고 귀찮게 느껴지겠지만, 우리는 비가 올 것을 예상할 뿐 비는 언제나 자기가 오고 싶을 때 온다”는 한 구절이 생각난다.
묻지마 범죄는 어느 순간 어디서 일어날지 모르는 대한민국의 시한폭탄으로 이번 사건을 통해서 보면 일이 터지면 이미 늦을 수밖에 없다는 교훈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사후 대처보다는 사전 예방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