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규환 같던 '진주 참변'…"어떻게 잊어야 할 지"
아비규환 같던 '진주 참변'…"어떻게 잊어야 할 지"
  • 박선하 기자
  • 승인 2019.04.18 14: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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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로 사람을 찌르고 있어요"…다급한 112신고 14건
주민들 트라우마 심각…아파트 곳곳에 혈흔 등 여전
17일 오전 경남 진주시 가좌동 한 아파트 방화·흉기 난동 사망 사건이 발생해 경찰이 현장에서 상황을 확인하고 있다.
17일 오전 경남 진주시 가좌동 한 아파트 방화·흉기 난동 사망 사건이 발생해 경찰이 현장에서 상황을 확인하고 있다.

지난 17일 오전 4시29분. 평화롭기만 하던 진주의 한 아파트의 새벽은 40대 남성에 의해 산산조각 났다.

이 남성은 준비한 휘발유를 이용해 자신의 집에 불을 지르고, 화재를 피해 아파트 밖으로 빠져나오던 주민들에게 흉기를 휘둘렀다.

덜 깬 잠으로 화재를 피하기 위해 도망쳐 나왔던 주민들은 아무런 이유도 모른 채 낯선 남성이 휘두른 흉기에 중상을 입었고, 심지어 목숨도 잃었다.

범인은 경찰과의 대치 끝에 현장에서 체포됐으나, ‘테러’에 가까웠던 당시 상황을 목격한 주민들은 여전히 공포 속에서 고통 받고 있다.

◇ "빨리 와주세요, 피가 흥건해요" 다급했던 그날

범행 당시의 참혹함은 권미혁 의원이 입수해 공개한 112신고 녹취록을 통해 알 수 있다.

이날 사건 발생 직후 경찰에는 14건의 신고가 접수됐다. 신고자들은 하나같이 다급한 목소리로 도움을 호소했다.

한 신고자는 "여기 누가 지금 사람을 찌르고 있다. 빨리 와달라"며 "(피해자가) 지금 계속 비명을 지르고 X(흉기)에 지금 맞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신고자는 "2층에 있는데 우리 집 3~4m 앞에 시신이 있어서 어쩌지를 못하겠다"며 "지금 그놈(범인)이 흉기를 들고 있어서, 사람들을 나오지 못하게 해요. 나도 나갔다가 찔리겠어요"라고 설명했다.

이 밖에 신고자들은 "빨리 와주세요 빨리", "지금 X에 찔리고 피가 흥건하다", "사람이 여러 명 죽고 있어요", "살인사건입니다, 살인사건"이라며 하나 같이 다급한 목소리로 신고를 접수했다.

신고를 받은 이날 오전 4시35분께 현장에 도착해 대치한 끝에 범인 안모(42)씨 검거했다. 하지만 5명이 숨지고 6명은 중·경상을 입었다. 7명은 화재 연기로 치료를 받았다.

'방화 흉기 난동사건'이 난 경남 진주시 모 아파트 화단 바닥에 18일 희생자가 흘린 핏자국과 주인을 잃은 신발이 놓여 있다.
'방화 흉기 난동사건'이 난 경남 진주시 모 아파트 화단 바닥에 18일 희생자가 흘린 핏자국과 주인을 잃은 신발이 놓여 있다.

◇ 남겨진 혈흔과 벗겨진 신발…심각한 트라우마

끔직한 흉기 난동은 안씨가 체포되면서 멈췄다. 하지만 참혹한 사건을 목격한 주민들은 여전히 그날의 공포를 생생히 느끼고 있다.

요란한 사이렌 소리, 시체로 변한 이웃, 피가 뭍은 사람들, 소방대원·경찰 등 수십명이 뒤엉켜 있어 전쟁을 방불케 한 현장을 목격한 주민들은 당시 상황을 쉽게 잊을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안씨와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던 한 주민은 "그날 너무 끔찍한 상황을 목격해 심각한 트라우마로 남을 것 같다"면서 "저녁에 되면 섬뜩하고 무섭다"고 울먹였다.

범행이 발생한 아파트 청소원은 "피범벅이 된 계단을 청소하면서 희생된 주민들이 자꾸 떠올라 내내 왈칵 눈물이 났다"며 "너무 끔찍한 일이다. 어떻게 잊어야 할 지"라고 말을 잊지 못했다.

아파트 곳곳에도 범행의 흔적은 여전하다. 벽 등에는 여전히 일부 핏자국이 남아 있고, 외부 출입구 쪽에는 희생된 주민의 벗겨진 신발이 놓여있다.

주민들의 상처를 치유하고자 행정안전부와 대한적십자의 심리회복지원센터, 경남재난심리회복지원센터, 진주보건소 등은 아파트 내 작은 도서관에서 심리치료를 실시할 준비에 들어갔다.

진주시는 '피해자 긴급지원 대책본부'를 구성하고 상황총괄반·의료지원반·장례지원반 등 7개 반을 운영하는 한편, 이 아파트를 운영하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피해자 지원책을 마련 중이다.

sunha@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