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유료방송 합산규제, 걸림돌이 돼선 안 된다
[데스크 칼럼] 유료방송 합산규제, 걸림돌이 돼선 안 된다
  • 나원재 기자
  • 승인 2019.04.17 17: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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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곤충학자 루이저 로스차일드 박사의 벼룩 상자 실험은 많은 교훈을 준다. 벼룩은 평소 자신의 키보다 100배 높은 높이까지 뛰어오를 수 있지만, 상자에 갇힌 벼룩은 상자 안 천장에 부딪히기를 반복하면서 스스로 뛰어오를 수 있는 높이를 제한했다.

어느 정도까지만 뛰도록 습관이 들었기 때문에 힘은 있지만 더 높이 뛸 수 있는 능력을 스스로 포기한 셈이다. 이 실험은 환경과 습관이 스스로 한계를 단정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국내 유료방송 시장이 ‘유료방송 합산규제’란 상자에 갇혔다. 글로벌 미디어 기업들은 한국 시장에 속속 상륙하고 있다. 국내 유료방송 시장은 시대의 흐름에 맞춰 요동치면서도 스스로 발목을 옥죌까 우려가 앞선다.

유료방송 합산규제는 특정 사업자가 전체 시장의 1/3 이상을 점유할 수 없다는 게 골자다. 2015년 KT와 KT스카이라이프의 유료방송 시장의 독점을 막기 위해 3년 일몰을 조건으로 도입됐고 지난해 6월27일 사라졌다. 정부는 이 기간 동안 통합방송법 제정 등 후속논의를 진행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다만, 시장의 환경 변화는 이보다 빨랐다. 유료방송 합산규제 재도입 여부를 두고 논의가 한창인 가운데, 국내 유료방송 시장의 인터넷TV(IPTV)와 케이블TV(SO)간 인수·합병(M&A)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SO가 가입자 감소와 수익이 악화되면서 IPTV를 중심으로 새판이 짜이면서 본격적인 규모의 경쟁이 예고됐지만, 유료방송 합산규제는 전체 유료방송 사업자의 성장을 제한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지난해 상반기 기준 유료방송 가입자 수는 3195만6419명으로, 2017년 하반기 대비 59만명이 증가했다.

사업자별로 KT는 660만5107명으로 시장 점유율 20.67%를 차지했고, SK브로드밴드는 446만5758명(13.97%), CJ헬로 416만1644명(13.02%), LG유플러스364만5710명(11.41%), KT스카이라이프 325만4877명(10.19%)을 기록했다.

KT와 KT스카이라이프를 합산한 가입자 수는 지난 2017년 하반기(958만명)대비 28만명이 증가한 986만명으로, 유료방송 시장에서 30.86%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또 IPTV가입자 수는 2017년 11월부터 SO 가입자 수를 앞섰고, 전체 유료방송 시장에서 IPTV와 SO간 가입자 수 격차는 약 107만6000명으로 벌어졌다.

이러한 가운데, LG유플러스-CJ헬로, SK브로드밴드-티브로드의 M&A는 가시화되고 있다. 이번 M&A가 최종 성사되면 CJ헬로를 품은 LG유플러스는 유료방송시장에서 점유율 24.4%로 2위에 올라서며 SK브로드밴드는 티브로드를 인수하면 점유율을 23.8%까지 끌어올리면서 3위에 올라 3강 체제가 확정된다.

KT의 경우, 현재 총 30.86%로 1위지만 언제든 자리를 내줄 수 있는 무한경쟁 시대에 직면하게 된다. 특히 유료방송 시장에서 각 사업자는 3강 구도에서도 글로벌 미디어 사업자와도 경쟁을 해야만 한다.

하지만 국회 여야는 지난 16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이하 과방위) 제2법안소위에서 유료방송 합산규제 재도입 여부를 논의했지만 결론은 한 달 뒤로 미뤘다.

과방위는 사전규제인 점유율 규제를 폐지하는 조건으로 유료방송의 공공성, 지역성 등을 확보하는 방안이 담긴 입법안을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여당은 유료방송 규제와 관련해 사전적 규제에서 사후적 규제로의 전환과 방송의 다양성, 공익성이라는 방송 특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의 보완·강화,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시장교란을 막기 위한 공정경쟁 확보 방안을 요구했다.

SO, IPTV 사업자인 이동통신 3사 등 이해관계자 의견을 반영해 법안을 제출해야 한다는 입장도 담았다. 과방위는 과기정통부이 안이 미흡할 경우 유료방송 합산규제를 연장하고 논의를 이어가겠다는 방침이다. 야당도 온도차는 있지만 여당의 제안을 수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공은 과기정통부로 돌아간 셈이다.

유료방송 시장은 국내 사업자 또는 글로벌 미디어 기업과 OTT(인터넷 동영상서비스) 협력관계를 구축하면서 체질을 강화하고 있지만, 또 다른 글로벌 미디어 경쟁은 여전히 한국 시장을 호시탐탐 엿보고 있다.

과기정통부가 내놓을 입법안에 관련업계의 이목은 쏠릴 수밖에 없다. 과기정통부는 유료방송의 다양성과 공익성을 유지하면서도 공정경쟁 확보 방안을 되도록 이른 시일 내에 제출해야만 한다.

과기정통부가 내놓을 안은 특정 사업자가 아닌 전체 유료방송 사업자의 명운을 결정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공산이 크다. 유료방송 사업자들이 제도의 틀에 갇혀 스스로 성장을 포기하게 만들어서도 안 된다. 습관의 힘은 반복되는 행동에 따라 극단적인 변화와 발전을 불러온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nwj@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