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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경자유전’ 헌법 훼손한 국회에 농심(農心) 멍든다
[기자수첩] ‘경자유전’ 헌법 훼손한 국회에 농심(農心) 멍든다
  • 박성은 기자
  • 승인 2019.04.1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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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헌법 121조 1항에는 ‘국가는 농지에 관해 경자유전의 원칙이 달성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며, 농지의 소작제도는 금지된다’는 조항이 있다. 이를 두고 ‘경자유전의 원칙(耕者有田之原則)’이라 말한다. 말 그대로 농사를 짓는 농민이 농지를 소유해야 한다는 얘기다. 농지법에서도 농업경영에 이용할 자가 아니면 농지를 소유하지 못한다고 명시됐다. 즉 농민이나 영농조합법인, 농업회사법인만이 농지를 소유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데 최근 언론보도를 통해 전체 국회의원 298명 중 약 1/3인 99명(배우자 소유 포함)이 농지를 소유하고 있고, 이들이 보유한 농지면적만 64만6706제곱미터(㎡, 19만3000여평)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축구장 90개 규모이자 여의도 면적의 1.5배에 달한다.

특히 농지를 보유한 99명 의원 중 절반이 넘는 53명이 매입을 통해 농지를 취득했고, 46명은 상속이나 증여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언론은 “경자유전의 원칙이 있음에도 수많은 의원들이 농지가 개발되길 기다리면서 ‘휴경’ 중인 사실을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또한 농지법에 따라 공직 취임 이후에 소작농을 둘 수 있지만 의원 당선 이전부터 불법 소작농을 통해 관리한 농지가 있고, 농사를 직접 짓겠다는 거짓 기록으로 농지취득자격증명을 얻은 것은 심각한 공문서 위조행위라고 전했다.

현행법상 농사를 짓지 않는 사람은 농지를 구입할 수 없다. 그러나 국민을 대표하면서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들이 헌법에 명시된 경자유전의 원칙을 심각하게 훼손한 점은 어떻게 봐야 할까. 가뜩이나 소농이 다수인 우리 농업 특성상 농지를 늘리고 싶어도 못 늘리는 게 현실이다. 새로운 희망을 찾기 위해 농업 현장에 뛰어든 청년농 역시 농사지을 땅이 부족해 전전긍긍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나랏법’ 만드는 국회의원들은 농가 권익보호를 앞세워 표를 얻고 청년농업인에게 줄 땅이 왜 없냐고 목소리 높였지만, 정작 뒤에서는 불법과 편법으로 농지를 소유하는 위선과 도덕적 해이를 보였다.

헌법에 경자유전의 원칙이 명시돼도 그간 농지소유 상한폐지 등 하위법령 적용과 함께 개발 논리를 앞세운 농지활용을 명목으로 비농업인의 농지소유가 점차 확대되고 있다. 더욱이 농촌 소멸과 고령화가 가속화되면서 이 같은 추세는 빨라질 수밖에 없다.

농지는 인류 생존을 위해 먹거리 생산과 자연보전 등 공익적 가치를 갖고 있다. 개발과 투기의 대상으로 볼 수 없는 대상이다. 농업계가 비농업인의 농지 소유를 강력히 제한하기 위해 국회에 법 개정을 꾸준히 요구하는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입법 발의의 주체인 국회의원들의 농지 소유 행태에 또 다시 농심은 멍들었다. 그럼에도 농지법 개정을 위해 국회의원에게 목맬 수밖에 없는 농업계의 모습이 한편으로는 씁쓸하다.

parkse@shina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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