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장애인 외면하는 '버스'…정부는 '돈 핑계'
[기자수첩] 장애인 외면하는 '버스'…정부는 '돈 핑계'
  • 황보준엽 기자
  • 승인 2019.04.08 15: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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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버스 터미널 이용 안 해요. 매표소도 못 찾겠고, 작은 글씨로 어디 행 어디 행 적혀있어 버스도 찾기 힘든데, 그냥 기차 타는 게 나아요"

최근 버스 터미널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 인증(Barrier Free, 이하 BF)' 관련 내용을 취재하던 중 만난 한 시각 장애인의 말이다.

버스 터미널은 장애인들에게 친절하지 않은 시설이다. 이들이 버스를 한번 타려면 온갖 역경과 마주해야 하는데, 매표소를 찾아 표를 끊고, 승강장을 찾아가 버스를 타는 데까지 수십분이 소요된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2016년 교통약자 시설물 이용 편의 향상을 목적으로 '제3차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계획(2017~2021년)'에 5개에 불과했던 BF인증 버스 터미널을 92개소까지 확대한다는 계획을 담았다.

국토부는 이를 교통약자를 먼저 배려하고 살피는 정책을 펼치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담긴 것이라며 그럴듯하게 홍보했다.

그렇다면 계획이 수립된 지 2년여가 지난 지금 버스 터미널의 교통약자 접근성은 얼마나 나아졌을까? 아쉽게도 기자가 직접 찾아가 본 몇몇 터미널은 여전히 장애인에 대한 벽을 높게 쌓아두고 있었다.

국토부는 계획 시행 첫해인 2017년에 2개 터미널을 선정해 BF인증을 지원했고, 이듬해에도 역시 터미널 2곳을 지원 대상으로 선정했다. 계획 시행 후 총 4곳에 대해 인증 지원이 이뤄졌고, 현재까지 BF를 인증받은 여객터미널은 총 12개소에 불과하다. 내 후년까지 목표치 92개소를 달성하기에 모자라도 한참 모자란다.

이번에도 문제는 부족한 예산이었다. BF인증을 위한 설비 설치 시 국토부에서 50%의 금액을 지원하는데, 기재부에서 예산을 적게 편성해 '지원할 돈'이 없다는 것이다.

정부의 계획은 언제나 그럴듯하다. 그러나 종국에는 어김없이 '예산 부족'을 탓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장애인을 위한 버스 터미널 개선 사업도 이 같은 공식을 벗어나지 못했다.

국토부가 터무니 없는 계획을 세운 것인지, 기재부가 마땅히 써야할 예산을 외면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강원도 산불 이재민을 도우려는 온정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 국민적 관심이 큰 사고여서 그런지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이재민 주거지원에 총력을 다하겠다"고 약속하고, 즉각 실행에 옮기고 있다.

뜻하지 않은 사고를 수습하는데 이처럼 적극적인 정부가 왜 오랜시간 불편함을 감수하고 있는 장애인들에게는 이토록 인색하기만 할까? 이 또한 보여주기식 정책의 부작용은 아닐까? 취임 초기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서 장애인들에게 손 내밀던 김현미 장관도 예산 부족에는 정말 뾰족한 수가 없는 것일까? 

정부 정책은 아무리 휼륭한 것이라도 국민적 신뢰를 잃는 순간 추진 동력을 상실한다. 하물며 스스로 세운 계획 마저 알아서 포기해버리는 상황에는 뭐라 할 말이 없다. 이번 정부의 장애인 정책도 결국 이렇게 힘없이 주저앉게 되는 것인가.

hbjy@shina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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