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된 공시제도! 최근 언론에 이런저런 이야기가 많이 언급되고 있다. 도대체 뭐가 문제지?
지금의 공시제도가 도입되기 전 우리나라 과세 기준은 건설부의 기준지가, 내무부의 과세시가 표준액, 국세청의 기준시가, 재무부의 감정시가로 나뉘어 있었다. 당연히 적용에 혼란이 있었다. 이를 해소하고 토지공개념을 뒷받침하고자 1989년 공시지가 제도를 도입하면서 주무 부처를 건설부(현 국토교통부)로, 조사·평가 주체를 감정평가사로 해 토지 공시지가를 만들었다. 문제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별 탈 없이 잘 운영돼 왔다. 그런데 최근 불형평성 등을 비롯한 여러 문제가 언론에 언급되고 있다. 왜 그럴까?
문제의 발단은 2016년 한국감정원과 감정평가업계의 오랜 갈등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국민을 속이는 짬짜미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싶다. 감정원과 평가업계 모두 반성해야 한다.
평가업계와 감정원은 감정평가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많은 갈등을 겪어왔다. 감정원은 감정평가시장에서 감정평가법인으로 의제 받은 주식회사에 불과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정부가 출자한 감정원에게 민간영역의 역할을 포기하라는 요구가 많았고, 급기야 감정평가시장에서 철수하는 것을 조건으로 평가업계와 합의하에 관련법을 성안했다.
문제는 감정원의 수익보장이었다. 평가시장에서 철수하면 금융기관 담보평가를 통해 벌어들이던 수익 약 400억원 정도가 평가업계로 이전되기에 직원들의 구조조정은 불가피했다. 이를 피하기 위해 400억원 정도의 시장 확보가 필요했고, 평가업계가 하던 주택공시업무를 가져가게 된 것이다. 이는 공시제도 발전보다는 평가업계와 감정원의 짬짜미로 공공기관이 공시업무를 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다른 나라는 과세 목적의 가치평가를 어떻게 할까?
정답은 “우리나라처럼 공공기관에 전적으로 일임하는 나라는 없다”이다. 굳이 있다면 캐나다의 13개 주 중 2개 주 정부 정도다. 모든 나라는 중앙정부 또는 지방정부에서 직접 담당하고 있다. 미국의 50개 주 정부 산하 지방정부는 감정평가사를 공무원으로 고용해 공시가격을 만들고 있으며, 일부 지방정부는 감정평가법인과의 계약을 통해 공시가격을 만들고 있다. 대표적인 지역이 버지니아주다.
왜 감정평가사 국가자격증 소지자에게 과세평가를 맡길까?
과세의 기초가격을 만드는 작업은 모든 국민의 세금과 관련되므로 매우 중요하고, 부동산은 그 특성상 고도의 숙련된 전문가가 아니면 올바른 가격을 찾아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나라는 중앙 또는 지방정부가 감정평가사를 공무원인 과세평가사로 고용하거나 감정평가법인과의 계약으로 과세기초가격을 만드는 것이다. 이는 납세자의 권리를 위해서이며 전문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함이다.
1982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조지 스티글리츠 박사의 포획이론(Capture Theory)에 따르면 공공기관은 국민의 이익보다는 조직의 이익을 위하는 방향으로 행동하게 된다. 과세의 과표 산정업무를 특정 공공기관이 독점하면 중앙정부뿐만 아니라 지방정부 역시 독점업무를 하는 기관에 포획돼 공공의 이익이 보장되지 못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감정원을 통해 공시제도를 운용하고 있는 우리나라가 곱씹어 볼 대목이다.
올해는 공시제도 도입 30년이 되는 해다. 다원화됐던 제도가 일원화됐다가 다시 이원화돼 혼란을 주고 있다. 이제라도 다시 국제적 기준에 맞게 국토교통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부동산 가치평가 전문가인 감정평가사를 활용해 공시가격을 생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잘못된 제도를 바로잡아 조세 형평성을 이루고 납세자 보호에 나서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