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지진은 예고된 '人災'… 정부 '관리방치'로 발생
포항지진은 예고된 '人災'… 정부 '관리방치'로 발생
  • 박고은 기자
  • 승인 2019.03.24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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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자가 만든 매뉴얼로만 시행…규제도 진도 2.5로 완화
정부조사단 "물 주입 후 지진 조사했다면 본진 막았을 것"
20일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남송리에 있는 포항지열발전소 모습. (사진=연합뉴스)
20일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남송리에 있는 포항지열발전소 모습. (사진=연합뉴스)

포항지진 발생 전 정부는 지열발전으로 인한 지진 위험성을 알고 있었으나, 사업자가 제출한 평가만 믿고 제대로 검증하지 않아 참사를 불러 일으킨 것으로 드러났다.

24일 바른미래당 이찬열 의원실이 입수한 '포항 EGS(인공 저류층 생성기술) 프로젝트 미소진동 관리방안'을 보면, 이 보고서를 작성한 지열발전사업 컨소시엄뿐 아니라 정부기관도 지진 발생 위험성을 인지했다.

보고서에는 EGS 활용 시 물에 강한 수압을 가해 암반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균열이 발생하며, 이로 인해 규모가 작은 지진인 '미소진동'이 발생할 수 있다고 기록돼 있다.

포항지열발전소 사업을 시작했던 2010년 당시에도 외국 사례 등을 통해 국내외 학계 및 관련 업계에 잘 알려진 내용이다.

그러나 컨소시엄은 지진 위험을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다고 판단했으며, 당시 정부도 이에 대한 적절한 지침 등 방안을 내놓지 않았다.

또한 정부는 컨소시엄의 평가만 믿고 관리방안 규제도 완화한 사실도 드러났다.

포항지진 정부조사연구단에 따르면 컨소시엄이 지열정 시추를 시작한 2015년 11월부터 2017년 11월 15일 포항 지진까지 지열발전소와 연관성이 있는 크고 작은 지진 총 98건 발생했다.

하지만 정부에 보고된 건은 2017년 4월 15일 발생한 규모 3.1 지진 단 한 건뿐이었다.
이는 정부가 사업자 등이 제출한 보고서만 있고, 정부 관리방안을 규모 2.0 이상에서 규모 2.5 이상으로 완화해서다.

포항 지열발전소 사업은 유발지진 안전 관리 방침 등 2010년 시작부터 정부 차원의 지침이나 규정 없이 추진됐다.

대신 컨소시엄이 스위스 바젤 등 다른 국가 사례를 참고해 만든 '신호등체계'(Traffic Light System)를 지침으로 활용했다. 신호등체계는 지진 규모별로 물 주입 감소·중단, 배수, 정부 보고 등의 조치를 정한 위험관리 방안이다.

여기서 문제는 포항 본지진 발생 7개월 전 발생한 지진위험 신호에도 정부의 대응이 미흡했다는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017년 4월 17일 컨소시엄이 지진 발생 이틀 뒤에 '규모 3.1 지진으로 주입 중단과 배수 조치 등을 했다'는 보고를 했으나, 별 조치를 하지 않았다.

여러 전문가들은 포항 본지진 발생 7개월 전 제대로 된 조사가 이뤄졌다면 본지진 당시 지진을 막을 수도 있었다고 본다.

이강근 정부조사연구단장은 "우리가 분석한 자료들은 새로운 게 아니라 이미 포항지진 전에 있었던 것"이라며 "4월 15일 지진 이후 바로 조사했다면 좀 더 많이 알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고 말했다.

gooeun_p@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