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과학기술과 접목된 경주의 미래
첨단 과학기술과 접목된 경주의 미래
  • 이수일
  • 승인 2009.01.11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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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는 신라천년의 고도이다.

서기 57년부터 약 600년 동안 신라의 도읍으로 그 후 약 300년 동안 통일신라의 중심일 뿐만 아니라 그 문화의 배경에 깃들여있는 첨단과학의 중심이었다.

서기 600년대에 건립된 첨성대는 좀더 정밀한 기상예측으로 계절의 변화와 농사의 길흉화복을 예측하려 노력한 첨단설비로 20세기 보현산 천문대에 버금가는 천문관측시설이다.

또한 첨성대의 구조적 안정성은 1,400년의 세월과 지형변화 지진과 기타 모든 풍상에 견디도록 안정되게 함은 물론 미학적요소를 가미해 당시의 첨단기술을 사용해 건립됐다.

포석정은 현대의 첨단과학으로 분석이 필요할 정도의 유체 공학적 정밀함으로 술잔이 흐르고 머물도록 설계되었다.

당시의 공학자들은 단지 경험과 감만으로 복잡한 수로의 유동성을 분석해 수로의 폭과 깊이, 낙차 등을 설계해 술잔이 적절하게 흐르고 멈추도록 만들 수 있었을까? 지금도 웬만한 소형공장에서는 다룰 수 없는 12만근에 달하는 쇳물을 녹이고 금형을 만들어 부은 성덕대왕신종을 만드는 기술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

하나의 조각품처럼 정교하게 처리된 종의 표면 문양과 현대 장비로도 다루기 어려운 청동주조기술, 음향을 고려해 음관을 설치하고 종구의 바닥에 설치한 명동을 설치하는 등 첨단기술을 사용했다.

근대에 밝혀진 황금율에 가까운 비율을 적용해 만들어진 석굴암의 미학적 완성은 단지 석공의 능력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멀리 대왕암을 바라보도록 방향을 설정하고, 완벽한 배수와 통기가 이루어지도록 기초를 만들고 건축구조를 설계한 것은 단순한 기능공 목수의 책임으로는 불가능 한 것이었다.

큰 바위를 다듬고 깎아서 당시로서는 국가의 대역사이었을 이 사업을 신라는 단지 몇몇 목수와 석수장이에게 의존하여 건축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렇듯 고도 경주는 단지 신라인의 생활중심지가 아니라 그 당시 첨단과학의 중심지였음이 분명하다.

비록 청동주조기술이 중국을 통해 전래됐고 포석정의 유적도 동양의 풍류문화의 일부라고 하지만 신라인들은 전래된 기술과 과학을 더욱 발전시키고 체화시켜 신라고유의 첨단과학기술을 만들었던 것이다.

그들이 발전시킨 첨단과학기술이 종교와 생활 속에 녹아들어 하나의 문화로 체현되고 역사적 산출물을 지금에 남겨놓고 있는 것이다.

이제 경주는 원자력을 중심으로 새로운 첨단과학 도시로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인류 과학문명의 미래가 에너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가에 달려있고, 지구환경변화 문제에 있어서도 청정에너지의 활용이 중심에 놓여있는 만큼 경주의 선택은 현명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선택이 싹을 틔우고 번성케 해 천년 전의 첨단과학 도시 경주를 재현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일부기관의 유치나 지원금의 활용에만 초점이 맞춰져서는 안 된다.

원자력이 경주의 문화가 되고 경주인들의 생활 속에 젖어들게 해야 하는 것이다.

경주가 원자력 전문인력 양성의 메카가 되고 전 도시의 생활문화에 원자력문화가 함께하고 모든 생각이 원자력의 과학적 틀에서 이루어지도록 우리의 생각의 틀이 형성돼야한다.

따라서 새로운 첨단과학도시 경주를 위해서는 관련기관의 노력 뿐 아니라 모든 시민의 참여와 장기적인 시야가 필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