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교섭단체 대표 연설이 있던 12일, 국회는 또 다시 고성과 삿대질로 뒤덮였다. 나 원내대표가 연설 도중 ‘더 이상 대한민국 대통령이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라는 낯 뜨거운 이야기를 듣지 않도록 해달라’고 하자, 민주당 의원들이 일제히 사과를 요구하며 아수라장이 됐다.
당초 3월 국회는 연초부터 장장 67일간의 폐업 이후 가까스로 열리게 됐지만 원활하게 돌아갈 것이라 예상하는 사람들은 적었다. 언제나 슬픈 예상은 틀리지 않는다. 13일 미세먼지 관련법 처리 약속 외에는 시계 제로였던 국회는 첫 과정인 교섭단체 대표 연설부터 엇나갔다.
민주당 의원들은 ‘국가원수 모독’이라며 반발했고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고성과 박수로 맞받아쳤다. 너무 거친 표현이란 주장과 이정도 표현도 못하는 의회냐며 대립각을 세우는 국회의원들을 보면서 국민들은 자괴감에 빠졌을지도 모른다.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란 표현이 적절한가의 논의는 다시 따져봐야 하겠지만 국민의 시선에서 볼 때 현재 국회는 국민을 무시하고 당리당략에만 빠진 정치꾼들의 난장판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번 국회에서 국민들이 바라는 것은 민생법안과 개혁입법안 통과였다. 물론 첨예하게 불거진 선거법 개혁도 정치 지형을 바꾸는 중요한 일이기에 관심이 높다.
하지만 여야 모두 자신들의 거취와 밀접한 선거법 개혁안을 놓고 스스로 어깃장 놓기를 반복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나 원내대표 출범과 함께 합의한 선거법 연동비례에 대해 말을 바꿨고 당의 입장조차 내놓지 않다가 여당과 야3당이 선거법 ‘패스트트랙 상정’을 합의하자 ‘비례대표제 폐지’를 중심으로 한 선거법 카드를 꺼내들었다.
이제 자유한국당은 국회에서 논의와 협의 판을 깨뜨리려는 목적을 더 이상 감추지 않는 듯하다. 어떻게든 현상을 유지해 내년도 총선을 치르자는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 나 원내대표의 연설도 정치에 대한 환멸을 유도하려는 계산이 깔린 것은 아니었는지 의심스럽다.
흔히들 ‘정치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라고 얘기한다. 생명력이 다해 폐기됐던 안들도 정치적 타이밍이 맞으면 다시 꿈틀대기 때문이다. 2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무너졌던 보수 세력이 최근 극우성향을 띠며 다시 목소리를 키우는 것도 무관치 않다.
나 원내대표의 연설로 국회가 아수라장이 된 이날, 문희상 국회의장의 한탄처럼 국회는 민주주의의 본령이고 시작이자 끝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지금 국회에서 보이는 행태는 상생은커녕 공멸의 정치다.
정당의 목적이 정권창출에 있다지만 ‘정도’를 버린 정치는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최소한의 명분조차 버리고 각종 꼼수와 정치공학적적 계산으로 만들어진 정치와 정권은 그 미래가 불 보듯 뻔하다.
[신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