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문재인 대통령은 3.1절 100주년 기념사를 통해 ‘신한반도체제’ 구축을 천명했다.
문대통령은 신한반도체제 구축의 전제조건으로 ‘우리의 한결같은 의지, 긴밀한 한미공조, 북미대화의 타결, 국제사회의 지지’등 4가지를 언급했다. 그런데 여기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한미 관계를 ‘동맹’이 아닌 ‘공조’로 표현했다. 즉 한미관계는 더 이상 동맹관계가 아닌 협조관계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만일 이것이 지금의 한미관계 위상을 설명하고 있는 현실이라면 우리는 매우 중대한 변화에 직면하고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역사적으로 한미 양국이 본격적인 관계설정에 들어간 계기는 6.25 전쟁이다.
전쟁 중 미국은 조기 휴전뿐만 아니라 탈 한반도까지 구상했다. 즉 실익도 없이 미국 청년들의 희생만 강요당하는 한반도에서 빠른 시일 내에 휴전협정을 맺고 발을 빼고자 했다. 이에 반해 이승만 대통령은 남북통일이라는 호기를 놓칠 수 없다는 목표도 있었지만, 통일을 이루지 못한다면 적어도 미국이라는 초강대국과 동맹관계 정도는 확실히 해 놓아야 한다는 절박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래서 이 대통령은 반공포로 석방과 국군의 단독 진공이라는 초강수를 두면서까지 미국을 압박했고, 미국은 이에 대응해 이 대통령 납치계획(일명 에버레디 작전)까지 세울 정도였다.
결국 한미 양국은 휴전협정 이듬해인 1954년에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함으로써 비로써 안보동맹 체제를 구축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한미동맹은 강대국과 약소국 간의 동맹관계이기 때문에 불평등 동맹이라는 멍에를 안고 있었다. 즉 한국군은 전쟁이 끝난 이후 지금까지도 작전통제권을 주한미군에게 위임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부대배치나 부대증설 및 각종 무기체계 선정까지 미국의 승인 또는 눈치를 봐야 했다.
박정희 정부에서는 미국의 요청으로 월남전에 참전해 수많은 한국 청년들이 피를 흘리기도 했다.
이로 인해 한미동맹은 단순한 동맹을 넘어 혈맹이라는 표현까지도 사용됐다. 물론 한미동맹 덕분에 한국은 국방비로 사용될 막대한 자원을 경제개발에 투입할 수 있었기에 지금의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발전할 수 있는 토대가 된 것이 사실이다.
그런 한미관계가 점차 동맹관계에서 단순한 협조관계로 변화하기 시작한 시기는 노무현 정부 출범이후 전작권 환수 문제가 불거지면서부터였다. 이 문제로 노무현 정부 내에서 동맹파와 자주파와의 갈등이 빚어질 정도였다.
이후 미국 정부는 한반도 정책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전방에 배치된 미 2사단을 평택으로 이전했고, 방위비 분담금 상향조정을 지속적으로 요구했다. 이번에 트럼프 대통령은 아예 노골적으로 방위비 분담금을 10억달러(약 1조2000억원) 이상으로 요구하는가하면, 수십년간 지속돼왔던 한미합동 훈련인 키 리졸브 훈련과 독수리 훈련까지도 훈련비가 많이 든다는 어이없는 이유를 들어 취소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런 추세로 가면 주한미군 철수가 구체화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의 지나친 요구에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하지만, 우리 정부의 정책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서 자주국방의 자신감이라면 다행이지만, 어찌보면 지나치게 남북관계 개선에만 매몰된 것이 이런 결과를 가져왔다는 지적도 있기 때문이다.
자국의 방위는 자국의 힘으로 해야 한다는 원칙도 중요하지만, 어찌됐던 북핵위기가 완전히 해소되지 못한 이 시점에 우리가 먼저 한미동맹을 단순한 협조관계로 격하시키는 것이 아닌가하는 우려가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