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檢, 조물주가 창조하듯 300여 페이지 공소장 만들어"
양승태 "檢, 조물주가 창조하듯 300여 페이지 공소장 만들어"
  • 박고은 기자
  • 승인 2019.02.26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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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 심문기일서 檢 수사 강하게 비판…'방어권 보장' 필요성 거론
"20여만 페이지 달하는 증거자료 내 앞을 장벽처럼 가로 막고있어"
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진=연합뉴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진=연합뉴스)

'사법농단' 의혹으로 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검찰을 비판하며 재판부에 방어권 보장을 위한 보석(보증금 등 조건을 내건 석방) 허가를 주장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2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박남천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보석 심문기일에서 직접 입을 열어 그간의 검찰 수사를 강하게 비난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검찰은 '별 형사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법원 자체 조사에도 불구하고, 영민한 목표 의식에 불타는 수십명의 검사들을 동원해서 우리 법원을 이 잡듯 샅샅이 뒤졌다"고 말했다.

이어 "그 결과 흡사 조물주가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 300여 페이지나 되는 공소장을 만들어냈다"며 "정말 대단한 능력이라고 나는 생각한다"고 검찰을 향해 날을 세웠다.

양 전 대법원장은 "제가 조사받는 과정에서 그쪽 검찰이 우리 법원의 재판에 관해, 그 프로세스에 관해 이해를 잘 못 하고 있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는 말도 했다.

또 "검찰은 법관이 얼마나 많은 고뇌를 하는지에 대한 이해 없이 그저 옆에서 들리는 몇 마디 말이나 몇 가지 문건을 보고 쉽게 결론 내리는 것으로 생각하는 듯했다"고 수사 과정에서 느낀 불만을 드러냈다.

그는 "더구나 대법원의 재판 과정에 대해서는 너무나 이해력이 없어서 제가 그걸 설명하기도 어려울 정도였다"고 덧붙였다.

양 전 대법원장은 "어쨋든 이 공소장에 대해서, 저는 대응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 뒤 "이 공소사실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무에서 무일뿐"이라며 "그리고 재판이라는 것이 원칙적으로 그렇지 않고 실상이 이렇다고 밝혀야 하는 상황에 왔다"고 밝혔다.

그는 "이 상황에서 저는 무소불위의 검찰과 마주서야 한다. 그 무소불위의 검찰에 대해서 내가 갖고 있는 무기는 호미자루 하나도 없다"면서 "그뿐만 아니고 그렇게 영민하고 사명감에 불타는 검사들이 법원을 샅샅이 뒤진 거의 20여만 페이지에 달하는 증거자료가 내 앞을 장벽처럼 가로막고 있다"고 '방어권 보장' 필요성을 거론했다. 

이어 "(검찰이) 내 임기 동안의 모든 것을 샅샅이 뒤지고, 내가 기억도 나지 않는 것을 따지고 들었기 때문에, 사실 내가 무슨 자료인지 보질 않으면 아예 생각도 기억도 나지 않는 부분이 많다"며 "내 몸이 있는, 책 몇 권을 두기도 어려운 그런 좁은 공간에서 20여만 페이지를 검토한다는 것은 아마 100분의 1도 검토를 제대로 못하는, 불가능한 일일 것"이라고 말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이런 방대한 자료의 내용을 모르는 상황에서 재판하는 것이 과연 형평과 공평에 맞는 것인지, 재판의 실상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실체적인 진실 구현에 합당한 것인지 저는 묻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 보석 신청에 대해서 재판부가 어떤 결론을 내든 나는 얘기하지 않다"면서 "그러나 이 사건 재판은 공평과 형평이라는 우리 형사소송 이념이 지배하는 법정이 되고 그 안에서 실체적 진실이 발견이 되고, 형사소송 원칙과 이념이 구현돼 정의가 실현되는 그런 법정이 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검찰과 양 전 대법원장 측에서 제출한 의견서 등을 참고해 적절한 시기에 보석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gooeun_p@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