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코레일 이번에는 '성차별 논란'…승객대피 도우미 '힘센 남성 필요'
[단독] 코레일 이번에는 '성차별 논란'…승객대피 도우미 '힘센 남성 필요'
  • 황보준엽 기자
  • 승인 2019.02.20 11:18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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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도로교통분야에 없는 엉뚱한 성(性) 고정관념
비판 거세지자 "추후 여성까지 추가해 운영할 것"
지난 설 연휴 남녀 승객들로 가득찬 KTX 열차 내부 모습.(사진=천동환 기자)
지난 설 연휴 남녀 승객들로 가득찬 KTX 열차 내부 모습.(사진=천동환 기자)

코레일이 강릉선 KTX 탈선 사고를 계기로 도입 예정인 '승객 대피 도우미' 대상을 남자로 한정하면서 성차별 논란에 휩싸였다. 항공이나 도로 교통 분야에도 비슷한 제도가 있지만, 성별을 제한한 경우는 없다. 사고 시 도우미로는 '힘 센 남성'이 필요하다던 코레일은 문제가 불거지자 승객 대피 도우미에 여성도 포함하는 것으로 계획을 수정하기로 했다.

20일 한국철도공사(이하 코레일)에 따르면, 코레일은 지난달 'KTX 승객 대피 도우미 운영계획안'을 마련하고 관련 절차를 추진 중이다.

이 계획은 열차 운행 중 비상상황 발생 시 사고 대응을 위한 가용인원을 확보하겠다는 취지로 기획됐으며, 다음 달 2주간의 시범 운영을 거쳐 오는 4월부터 모든 KTX 열차에 적용될 예정이다.

도우미 좌석을 구입한 승객은 열차사고 등 긴급상황 발생 시 승무원의 지시에 따라 응급환자 구호와 탈출로 확보 등을 지원해야 한다.

코레일 관계자는 "열차사고 등 긴급 비상상황 발생 시 보다 안전하고 신속한 조치를 위해 승무분야 직원을 도와주는 조력자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도우미 운영계획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열차 사고 피해를 최소화 한다는 긍정적 취지에도 불구하고, 코레일 안팎에서는 이번 계획의 부적절함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다. 문제로 지적된 부분은 도우미 승객 대상을 만 20~50세의 '성인 남자'로 한정한 것인데, 이것이 구시대적 성 차별이라는 것이다.

KTX 승객 대피 도우미와 비슷한 제도를 운영 중인 항공 업계와 고속버스 업계는 도우미 승객 대상을 '신체 건강한 남녀'로 규정하고 있는 상황에서 유독 코레일만 여성을 배제한 범위 설정으로 논란을 겪고 있다.

국토부 대중교통과 관계자는 "사고 발생 시 탈출로를 확보하는 등의 업무를 수행하는데 남녀 구분이 없고, 여성도 충분히 도우미 역할 수행이 가능하다"며 "성별에 따라 구분하면 혼란만 가중될 뿐"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한 본지 취재가 진행되자 코레일은 비상상황 발생 시 비상용 망치를 이용해 유리창을 깨야 하는 등 완력이 좋은 남성이 유리할 것으로 판단했다고 해명하면서, 논란이 있는 만큼 계획을 수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코레일 관계자는 "사고가 발생하게 되면 유리창을 망치로 깨야 하고, 부상자를 호송해야 하는데 힘 센 남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내린 결정"이라며 "이를 개선하라는 지적이 있어 추후 여성까지 추가해 운영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KTX 승객 대피 도우미 운영계획안에 담긴 도우미 승객 대상 범위.(자료=코레일)
KTX 승객 대피 도우미 운영계획안에 담긴 도우미 승객 대상 범위.(자료=코레일)

한편, 전문가들은 이번 논란이 남성 중심 문화에서 종종 발생하는 성인지 감수성 부족에서 비롯된 결과라고 지적했다. 성인지 감수성은 성별 간의 불균형에 대한 이해와 지식을 갖춰 일상생활 속에서의 성차별적 요소를 감지해 내는 민감성을 말한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망치로 유리를 깨기 힘들다면 다른 장비를 개발해야지, 남성만 선발기준으로 삼는 것은 사고 발생 시 여성은 가만히 있으라는 말과 다를 바 없다"며 "지극히 자의적인 판단으로, 남녀의 성 고정관념을 버리지 못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hbjy@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