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사용하지도 않을 스크린도어에 혈세 쏟아붓기
[기자수첩] 사용하지도 않을 스크린도어에 혈세 쏟아붓기
  • 황보준엽 기자
  • 승인 2019.02.13 15: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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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철도역 스크린도어 설치에 대한 법적 근거도 없고, 비용도 과다하다. 스크린도어 도입 계획은 계획이었을 뿐 도입하겠다고는 하지 않았다"

일반·고속철도역 스크린도어 설치 여부를 묻는 말에 대한 국토부 관계자의 답변이다. 이 말 한마디로 260명이 모여 4년여간 쌓아 올린 '공든 탑'이 설 자리를 잃었다.

KTX와 새마을호 등 여러 종류의 열차가 정차하는 기차역의 경우 지하철역과 달리 차종별로 승하차 위치가 일정치 않아 스크린도어 설치가 어려웠다.

국토부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 승객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총 85억원 규모 국가 연구개발(R&D) 사업을 진행했으며, 교통연구원 등 수행 기관은 지난해 8월 일반 철도역에도 적용할 수 있는 스크린도어 개발을 완료했다.

이제 계획대로 신형 스크린도어를 설치해 승객 안전을 지키면 된다. 그런데 웬일인지 국토부가 180도 태도를 바꾸고 꿈적하지 않는다. "계획일뿐이었다"거나 "필요성이 크지 않다", "비용이 많이 든다" 등 핑계도 여러가지다.

국토부는 스크린도어와 관련한 일련의 과정에서 크게 2가지 측면에서 잘 못된 판단을 했다.

하나는 무책임한 국가 연구개발 과제 선정이다. 애초부터 사용하지도 않을 기술을 개발하는 데 왜 피같은 국민 세금을 쏟아 부은 것인가? 이제 와서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무책임함은 우리나라 국가 R&D가 얼마나 형식적이고 허술하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두 번째는 "필요성이 크지 않다"는 판단이다. 스크린도어가 없는 기차역 승강장을 제대로 관찰해 봤다면 이런 말을 하기 어렵다.

아무런 안전 장치가 없는 상태에서 안전 관리 인력도 턱없이 부족하다. 당장 사고가 발생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것이 지금의 승강장 상황이다.

국토부는 국민에게 지키지도 못 할 약속을 했고, 그 약속을 스스로 어기는 과정에서도 납득할만한 이유를 대지 못하고 있다.

곧 있으면 입학 시즌이다. 초등학교에 처음 들어가 생활계획표 짜는 방법을 배울 때 선생님들이 꼭 하시던 말씀이 있다.

"계획표는 지킬 수 있게 짜는 거란다. 그리고 일단 계획을 세웠으면 잘 지킬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단다"

hbjy@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