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 수형피해자 현창용옹 별세…향년 87세
제주4·3 수형피해자 현창용옹 별세…향년 87세
  • 동지훈 기자
  • 승인 2019.02.10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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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죄로 징역 20여 년…누명 벗은 지 3일 만
지난 2017년 3월28일 제주시 하니호텔에서 열린 '4·3역사 증언 및 제주 4·3인천형무소 수형희생자 실태조사 보고회'에서 증언하는 현창용(오른쪽) 할아버지. (사진=연합뉴스)
지난 2017년 3월28일 제주시 하니호텔에서 열린 '4·3역사 증언 및 제주 4·3인천형무소 수형희생자 실태조사 보고회'에서 증언하는 현창용(오른쪽) 할아버지. (사진=연합뉴스)

제주4·3 사건의 수형 피해자인 현창용 할아버지가 지난 7일 오전 향년 87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4·3 생존 수형인 18명이 청구한 ‘불법 군사재판 재심’ 선고공판에서 제주지방법원이 사실상 무죄를 인정한 공소기각 판결을 내린 지 21일 만이다.

10일 4·3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에 따르면 제주시 노형동 출신인 현 할아버지는 16세였던 1948년 9월26일 새벽 갑자기 경찰에 연행돼 고문을 당한 뒤 임의로 작성된 조서에 지장을 찍었다.

현 할아버지에게 적용된 죄명은 내란죄였다. ‘구 형법 77조 내란죄’로 징역 5년을 선고 받은 그는 인천형무소로 글려가 수형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6‧25전쟁이 발발한 틈을 타 형무소를 빠져나온 현 할아버지는 제주로 가기 위해 지리산을 지나던 중 인민군에게 붙잡혀 개성으로 끌려가 징역 20년을 선고 받았다.

1970년이 돼서야 고향으로 돌아온 현 할아버지는 연좌제로 또 한 번 시련을 겪었다. 고인의 딸이 법학과를 졸업하고 공직에 합격했지만 신분조회 과정에서 채용이 취소된 것이다.

현 할아버지는 숨을 거두기 전까지도 자식들이 ‘연좌제’로 겪은 일들을 마음 아파했다.

무죄를 밝혀야겠다는 결심과 원통함은 재심 재판 청구로 이어졌다.

4·3 수형인 재판을 이끌어온 양동윤 4·3도민연대 대표는 “재심 준비 과정에서 현 할아버지가 ‘억울함을 풀고 싶은데 재판을 해주겠다는 변호사가 없다. 양 대표가 재판하게 해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한 덕에 확고한 의지를 가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양 대표는 이어 “현 할아버지는 기력이 쇠약해진 상태에서도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법정에 출석했다. 대답조차 하기 힘든 건강상태에도 피고인 심문을 위해 법원을 찾기도 했다”며 “결백함을 밝히기 위한 의지가 확고한 분이었다”고 회고했다.

현 할아버지는 그러나 건강이 나빠져 결국 지난달 17일 재심 선고일에는 참석하지 못했다.

양 대표는 “돌아가시기 전에 누명을 벗은 것은 다행이지만, 남은 절차를 끝까지 지켜보지 못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빈소는 제주시 S-중앙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오는 11일 오전 9시30분이다.

빈소에는 4·3도민연대 관계자들과 재심 과정을 함께한 변호사들, 함께 재심 재판에 참여한 4·3 수형 피해자와 가족 등이 찾아 애도의 뜻을 표했다.

jeehoon@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