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선거캠프에서 사이버팀장으로 일할 때 이야기다. 과연 상대 진영의 사이버팀장은 누구일까? 유난히 두뇌가 뛰어나고 전략이 탁월했다. 그를 알아야 그 많은 퍼즐이 풀릴 것 같았다. 수많은 아이디와 IP주소, 글 속에서 ‘그’를 찾아내는 것은 ‘서울에서 김 서방을 찾는 것’과 진배없었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글에는 자신만의 패턴이라는 것이 있는 법. 찾았다, ‘그’가 아니라 ‘그녀’였다. 그리고 상대 후보자의 가족이었다. 그녀가 십여 개의 아이디로 쓰는 모든 글은 사이버팀장의 전략이고 후보자의 마음이었다.
얼마 뒤 우리 진영에 비상이 걸렸다. 상대 진영에서의 폭로 때문이었다. 격렬한 토론이 이어졌고, 후보자가 직접 나서 해명하는 것으로 결론이 날 즈음에 발언권을 얻어 말했다. “폭로에 절대 대응해서는 안 된다. 상대는 추가 폭로를 준비 중이고 이것은 함정이다.”
결국 우리는 무대응으로 일관했고 선거에서 승리했다. 상대의 추가 폭로를 예측한 것은 전날 상대 사이버팀장이 우리 팬인 것처럼 위장해 쓴 댓글 덕분이었다. “후보님, 정말 존경합니다. 그런데 왜 폭로에 침묵하세요? 꼭 직접 해명하셔서 진실을 밝혀주세요!”
드루킹과 김경수 경남지사가 지난 1월30일 ‘컴퓨터등장애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법정 구속됐다. 댓글조작이 선거에 얼마나 악영향을 끼치는지 사람들은 잘 모르는 것 같다.
21세기에 무리 이탈은 다른 말로 ‘왕따’다. 그러니 늘 남의 평가에 촉각을 기울이며 살아간다. 아무리 쿨한 척해도 늘 무리(다수)의 생각이 어떤지 알고 싶어 하고 그것에 반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 이래서 댓글이 무서운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댓글을 읽고 자신의 생각을 거기에 맞추는 경향이 있다. 설문조사에서 댓글이 투표에 영향을 끼쳤는지 물어보면 ‘백이면 백’ 아니라고 답하지만 정교하게 설계된 질문을 던지면 적지 않은 이들이 댓글에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드루킹은 사이버선거에 어느 정도의 역량을 갖췄을까? 사이버선거 전문가 관점에서 본다면 그는 단순한 사이버전사가 아니다. 고도의 정무적 판단이 가능한데다 심지어 예지력과 통찰력을 가지고 있다. 이런 사람이 고도 매크로 프로그램인 ‘킹크랩’까지 갖추었다.
선거에 있어서 사이버전은 앞으로 더욱 고도화 될 것이다. 제2, 제3의 드루킹이 또 나오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다. 언제까지 그들에게 여론과 정세를 맡겨야 하는가?
먼저 선거의 가장 중심에 있는 출마 당사자는 사이버 전문가들의 면면을 냉철히 판단할 필요가 있다. 자신이 “탄핵을 주도했고 대통령까지 만들었다”는 그릇된 자가당착에 빠질 수 있는 드루킹식의 인사가 온라인을 쥐락펴락하면 결국 언젠가는 화살이 되돌아 올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또 무리 다수의 온라인상의 ‘말’이 본질을 덮고 있지는 않은지 국민도 한두 번쯤 의문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언론의 무차별적 퍼나르기식 기사 생성도 절제되고 다듬어져야 한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진보, 보수 진영으로 나뉜 우리 정치현실에서 여당과 야당이 일관해온 공격 프레임을 버리고 공정한 게임이 이뤄질 수 있는 자정의 노력이 필요하다. 정략이 아닌 정책의 제시와 검증을 통한 선거전이 돼야 한다. 조작된 여론의 끝은 언제나 그래왔듯 역사의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을 정치인은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