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일본이 했어야 하는 말, 그들이 듣지 못한 말
[기자수첩] 일본이 했어야 하는 말, 그들이 듣지 못한 말
  • 동지훈 기자
  • 승인 2019.02.01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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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과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려면 활기찬 기운을 내보여야 하겠지만, 조금 엄숙하게 시작해볼까 한다.

1926년 경남 양산에서 태어난 그는 만 14살이 된 1940년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중국과 홍콩,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 타국에서 성노예 피해를 입었다. 

해방 후 일제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그는 부산 다대포 앞바다에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구멍가게와 살림집이 딸린 횟집이 그가 몸을 뉘일 곳이었다. 사람들은 고향 이름을 따 그를 양산댁으로 불렀다.

지난달 28일 향년 93세로 별세한 ‘위안부 피해자의 상징’ 김복동 할머니의 이야기다.

여러 계절을 잔잔한 파도와 함께 보내던 김 할머니는 1992년 위안부 피해 사실을 세상에 처음 알렸다. 가족의 만류에도 ‘나를 찾아야겠다’던 그는 40여 년의 세월 동안 자신의 과거를 부정하는 세력과 싸웠다. 세계 각지를 다니며 일본군의 만행을 고발했고 여성인권을 위한 행동에 나섰다. 

반평생의 걸친 그의 투쟁의 역사는 그러나 아직까지도 가해국의 몽니에 가로막혀 있다. ‘나를 찾고 싶어서’ 조용히 살기를 거부한 김 할머니는 되려 “나를 찾고 더 쓸쓸해졌다”고 털어놨다. 

금방 끝날 줄로만 알았다, 용서하고 가고 싶었다는 희망은 생의 마지막 순간 일본 정부가 이럴 수가 있냐는 절규와 분노로 바뀌었다. 그렇게 김 할머니는 영원히 잠들었다. 일흔여덟 번의 설날 동안 용서하지 못한 채.

이제 스물세 명의 용서가 남았다. 그들에게 남은 시간은 많지 않을 듯하다. 바라건대 이들이 지난날 폭력의 기억을 되새김질해야 하는, 그런 고통스러운 나날들을 보내지 않기를 희망한다. 

일본의 만행을 감내하는 데 피해자들의 여생이 쓰이지 않으려면 했어야 하는 말이 필요하다. 했어야 하는 말은 하지 않은 말이다. 김 할머니와 남은 스물세 명의 입장에선 들어야 했지만 듣지 못한 말이다.

남은 것은 일본의 진심어린 사과다. 이미 많이 늦었으나 진작 건넸어야 하는 사과가 더 늦어지지 않길 바라본다.

jeehoon@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