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설맞이] “차라리 노동자로”…편의점 가맹점주들의 한숨
[우울한 설맞이] “차라리 노동자로”…편의점 가맹점주들의 한숨
  • 김소연 기자
  • 승인 2019.01.31 18: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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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불황·출점 경쟁·최저임금 인상까지…설 분위기 ‘실종’
과밀화된 점포에 수익은 점점 줄어 ‘악순환’…폐업 고민도   
점주 “본사가 동반상생 차원 최저임금 인상분 분담 노력”
(사진=김소연 기자)
(사진=김소연 기자)

10년째 서울 동대문구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한 점주는 새벽부터 지키고 있는 본인의 가게를 가리켜 ‘담배가게’라고 농담처럼 말하면서 씁쓸하게 웃었다. 그러나 실제로 한 시간여 동안 20여명의 손님이 찾아왔는데 80% 이상이 담배만 사서 나갔다. 

설을 앞두고 있는 요즘이지만 편의점 앞에는 선물세트 하나 진열되지 않아 명절 분위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지난해 기준 편의점 점포 수는 4만개를 넘어 ‘과포화’에 이르렀다. 이 편의점 주변 반경 250m 이내에도 8개의 편의점이 영업 중이고 바로 옆에 대형마트도 있다. 주변에 1300여 세대 아파트 단지와 사무실, 공원도 있지만 본사의 과도한 출점 경쟁에 편의점이 하나둘 늘면서 수익은 점점 줄어드는 실정이다. 

점주는 “연매출 2억7000만원에서 임대료와 로열티(20%) 100만원과 인건비를 떼면 한 달 순수익이 100만원밖에 안 된다”면서 “그것도 최저임금 인상 전부터 경기가 안 좋아 알바 없이 점주가 주당 50시간씩 일하고 있는데 얻는 수익이 알바 월급보다 적은 100만원”이라며 한숨을 지었다. 계산해보면 최저임금 인상 전보다 약 47만원가량(주휴수당 미포함) 수입이 줄어든 셈.

다른 편의점들도 힘들긴 마찬가지다. 

충청도에서 편의점과 다른 가게를 3년째 운영중인 한 점주도 “편의점에서 연간 최소 5000만원씩 손해가 나 다른 사업에서 번 돈으로 메우고 있다”면서 “경기가 안 좋아 매출이 떨어진데다 인건비까지 늘어 문을 닫아야 할지 고민이다”고 말했다. 

점주는 최저임금이 인상된 이후 하루 15시간씩 일하다가 갑상선 이상이 와 투병 중이라고 하소연했다.

점주는 “편의점 본사 직원이 점포수를 늘리려고 과장 광고한 말만 믿고 편의점을 시작한 것을 정말 후회한다”며 “직원이 작은 평형 점포를 큰 평수 기준으로 예상 매출을 부풀려 계약을 유도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점포를 개설하는 직원은 본사가 영업실적으로 월급 인상 등 모든 것을 결정하기 때문에 예상 매출액을 부풀리며 무분별한 출점을 강행한다. 장사가 안 되는 편의점과 전혀 다른 업종의 가게에 없던 권리금을 만들어줘 나가게 한 후 편의점을 개설해 새로 들어온 점주가 높아진 권리금과 영업 손해를 떠안게 만든다는 것.  

그러면서 “여러 사업을 해왔지만 편의점 업계는 모든 비용을 점주가 전부 부담하게 만들기 때문에 착취구조가 너무 심하다”고 주장했다. 

편의점은 점주가 수익이 안 나도 본사는 수익을 안정적으로 가져갈 수 있다. 본사의 물류비·장려금·광고비에 심지어 물건 판돈까지 매일 입금하지 못하면 고금리 이자를 붙여 가져가는 구조다. 이에 본사는 수익을 위해 점주 상황은 고려 없이 무분별하게 점포 수를 늘리려고 하는 것이다.

점주들은 계속되는 경기불황과 무턱대고 최저임금을 인상한 정부, 무엇보다 마구잡이 출점을 밀어붙이는 본사의 횡포가 얽혀서 점주들을 힘들게 한다고 말한다. 어쩌면 최저임금보다 점포과밀화가 더 큰 문제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달 공정거래위원회가 편의점·외식·도소매·교육서비스 분야 표준가맹계약서를 개정해 야간영업시간 단축이나 명절 또는 직계가족 경조사 때 휴점 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것에 대해  긍정적이라는 반응이다. 그러나 이 내용이 담긴 가맹거래법이 통과되기까진 권고사항일 뿐 강제성은 없다. 

점주들은 “지금도 상생안이 나오고 있지만 본사와 점주가 동반상생 차원에서 최저임금인상분 분담에 대해 조금 더 노력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울러 “정부와 본사는 점주들이 최소한의 생활이 가능하도록 지원금을 주거나 과밀화된 점포수를 줄일 수 있도록 한시적으로 희망 폐업자들에 한해 위약금(신규 5000만 원)을 면제해 점포 수를 줄여야 모두 상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올해가 너무 두렵고 차라리 폐점이라도 마음대로 해서 노동자나 알바로 나서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많다”면서 “좋은 상생안이 나와 잘 지켜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jjh@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