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데자뷰…우울한 설” 中企의 비명
“IMF 데자뷰…우울한 설” 中企의 비명
  • 이가영 기자
  • 승인 2019.01.31 10:1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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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건비·원자재값 상승에 매출부진·일감축소까지 ‘四重苦’
영세업자 최저임금·주휴수당 부담으로 체불임금도 증가
정부 설 특별자금 등 지원책 내놓고 있지만 체감 안 돼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설 연휴가 코앞이지만 중소기업은 우울한 분위기에서 좀처럼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명절 자금마련의 고충이 어제 오늘 일은 아니지만 올해는 유난히 힘들다는 게 업계의 얘기다.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내수시장이 얼어붙고 2년 연속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인건비 부담과 원자재 가격상승 등이 주원인으로 꼽힌다. 

“작년과 비교하면 아주 나빠져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다.”

경기도 광주에서 포장·아이스팩 전문 제조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조 모씨는 이 같은 고충을 토로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조씨는 “최저임금이 오르면서 인건비 부담이 커졌고 원부자재 비용도 올랐는데 대량으로 공급하다보니 납품 원가는 낮아질 수밖에 없다”며 “다 오르는데 마진은 점점 더 줄어들다보니 주변에서는 ‘IMF보다 더 힘들다’는 말까지 나온다”고 토로했다. 

내로라하는 기업에서 산업용 장비를 제작하던 조씨는 지난해 4월 인생 2막을 꿈꾸며 창업을 시작했지만 현장은 상상이상으로 열악했다.

“최저임금 인상? 말은 좋지만 오히려 근로자들의 걱정은 더 늘었다. 주변을 봐도 주휴수당 부담을 줄이려고 정규직 대신 파트타임을 늘리거나 심지어 불법 외국인 노동자를 채용하고 있다. 평균 마진율이 10%에도 못 미치는 상황이어서 올해 상여금은 상품권으로 대신할 생각이다.” 

경기도 시흥에서 자동차 부품을 제조·납품 중인 업체 대표 최 모씨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최씨는 올 설 직원들의 상여금을 지난해 대비 50~60% 줄이거나 간소한 선물세트로 지급할 계획이다. 

최씨는 “자금이 8000만~9000만원정도 부족해 거래처 자재구입 대금지급을 늦추고 직원 급여와 상여금을 줄이는 등 자금줄을 바짝 조이고 있다. 회사가 납품하는 물량이 급격하게 줄어 매출액 감소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그는 “원자재 가격이 지난해보다 두 배 올랐지만 가격경쟁력 때문에 판매단가는 올리지 못하면서 매출이 작년에 훨씬 못 미친다”며 “그나마 확보한 일감도 납품날짜를 맞추려면 주야간 교대나 설 연휴에 추가 근무가 불가피한데 여기서 발생하는 인건비를 감당할 자신이 없다”고 고민했다. 

경북 소재 식품포장재 제조업체에서 근무하는 근로자 이모씨는 회사 사정이 올 들어 급격히 악화되면서 임금을 받지 못할 상황에 처했다. 

그는 “회사 거래처 의뢰 전화가 작년보다 90%나 줄었고 주문도 반토막 났다. 6000만원이 넘던 월 매출은 올 상반기부터 감소해 지난달에는 1000만원에 그쳤다. 일감이 줄면서 회사는 이번 설 연휴에 완전히 문을 닫기로 했다”며 참담한 심경을 전했다. 

이어 이씨는 “상여금은 바라지도 않는다. 그것보다 ‘회사가 파산하면 어떡하나’라는 두려움이 앞선다. 당장 거리로 나앉게 되는데 가족들 볼 낯이 없다”고 걱정했다.  

(사진=아이클릭아트)
(사진=아이클릭아트)

설 명절을 앞두고 중소기업 경영자와 직원 상당수가 매출부진과 원자재·인건비 상승, 일감 축소 등으로 삼중고 많게는 사중고를 겪고 있다. 오죽하면 ‘IMF 데자뷰’라는 말까지 나온다. 

실제 최근 중소기업중앙회가 858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9년 중소기업 설 자금 수요조사’ 결과에 따르면 중소기업 두 곳 중 한 곳(50.8%)은 자금사정이 곤란하다고 답했다. 작년 설과 비교할 때 3%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자금사정 곤란원인으로 ‘인건비 상승(56.3%)’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이어 판매부진 47.5%, 원·부자재 가격상승 26.9%, 판매대금 회수지연 22.7%, 납품대금 단가 동결·인하 17.1%, 금융기관 이용곤란 10.6% 등의 순이다.

마진이 남지 않는데 사업은 지속돼야 하니 임금을 미루는 기업들도 속수무책으로 늘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최근 발표한 지난해 우리나라 임금체불 규모는 1조6472억원으로, 전년 1조4386억원과 비교해 15%나 증가했다. 특히 5인 미만 사업장 체불임금은 4700억원으로 전년보다 24%가량 크게 늘었다. 

지급능력이 낮은 영세사업장의 체불임금 증가를 두고 최근 2년간 두 자릿수 인상률을 기록한 최저임금과 주휴수당이 원인이라는 지적도 있다.

조 대표는 “정부가 설을 맞아 특별자금을 푸는 등 지원책을 내놓고 있지만 체감되지 않는다”며 “오히려 자금을 마련할 구석이 없어 막막하다”고 말했다. 

정부 대책이 역효과를 불러오기도 했다. 조 대표는 “연대보증이 폐지되면서 과거에 비해 금융권 대출도 훨씬 까다로워졌다”며 “대기업과 MOU를 맺고 납품을 하는 등 레퍼런스가 있어도 신생 기업이고 단순 제조업이라 대출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 오히려 제조업을 고사시키고 있다”고 울분을 토했다.

최 대표 또한 “주휴수당에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건비가 저렴한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할 수밖에 없다”며 “문제는 비숙련자인만큼 제품의 품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고 제조업 전체 제품의 질까지 떨어지는 양상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그는 “정부는 자금을 얼마나 많이 공급하느냐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자금지원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를 면밀히 들여다봐야한다”고 조언했다.

young2@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