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한돈 농가의 지속가능을 위한 생각
[전문가 칼럼] 한돈 농가의 지속가능을 위한 생각
  • 신아일보
  • 승인 2019.01.28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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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낙삼 좋은상품연구소 소장, 공주대학교 겸임교수
 

돼지가격 폭락세가 심상치 않다. 최근 5년 새 최저점을 통과 중이다. 

올해가 60년 만에 찾아온 ‘황금돼지해’라고 마케팅 현장에선 함박웃음을 짓는 돼지그림이 가득하지만 정작 돼지를 키우는 농가는 계속되는 가격하락으로 웃을 수가 없다. 초중고의 겨울방학으로 식자재 구매 감소까지 겹쳐 가히 돼지고기 값은 폭락이라고 할 수준으로 떨어졌다.

실제로 한돈자조금관리위원회는 최근 1월 돼지고기 값이 최근 5년 사이 최저가격을 기록해 한돈 농가가 돼지를 출하할 때마다 두당 9만원의 금전적 피해를 입고 있다고 밝혔다.

돼지고기 가격이 급락한 가장 큰 원인은 작년부터 시작된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으로 인해 중국 판로가 막히면서 급격히 늘어난 미국산 수입돼지고기 때문이다. 작년 돼지고기 수입량은 약 45만t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지속된 경기 침체에 따른 외식소비 둔화도 영향을 미쳤다. 지난 27일 한국은행이 밝힌 ‘2019년 1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작년 12월 96.9에서 0.6포인트 상승한 97.5를 기록, 기준치인 100을 밑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인 외식의 대표 메뉴인 돼지고기 소비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수입량이 늘어나고 있는 수입고기 중에 눈에 띄는 원산지가 있다. 스페인이다. 농림축산검역본부 축산물 검역통계에 따르면 2013년 수입량이 6,445t이었던 스페인산 돈육은 지속적으로 증가해서 2016년에는 4만1919t으로 미국, 독일에 이어 3번째 많은 양을 기록했다. 2018년 7월까지 3만2300t이 수입돼 2018년 수입량은 사상 최대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스페인산 이베리코 돈육이 국내 소비자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이베리코 돈육은 온라인은 물론 백화점, 대형할인점, 고급 레스토랑뿐만 아니라 이베리코 국밥집까지 등장하며 국내 돈육시장의 점유율을 확대해 가고 있다. 문제는 지금의 점유율이 아니다. 소비자들의 인식에 있어 이베리코가 국내 한돈보다 고급육이라는 인식이 온라인을 통해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비육을 위해 움직임을 최소화한 케이지에서 6개월 동안 115kg을 목표로 생산돼 등급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는 그냥 돼지인 백돈(白豚)에 비해, 이베리코는 바다 건너온 스페인산에 흑돈(黑豚)의 한 품종으로 짧게는 10개월부터 길게는 17개월 동안, 목초지에 방목하며 야생도토리와 올리브, 유채꽃, 허브 등을 먹고 자라 ‘걸어 다니는 올리브 나무’라는 별명까지 붙어 있다. 품질의 등급화를 기반으로 사육방식으로 인한 인식의 차별화가 만들어져 있는 것이다. 등급화와 차별화는 먹기도 전에 이베리코에 대한 맛과 향에 호의적인 ‘플라시보(Placebo effect)효과’까지 나타낸다. 

균일화된 품질과 규격의 한돈은 저렴한 가격만이 선택의 우선권을 결정하지만 이베리코는 독특한 이야기와 차별화된 등급으로 고객의 취향과 선호에 따라 선택받는다. 가격은 그 다음이고 때로는 아예 고려되지 않기도 한다.

상황이 급해진 한돈자조금과 대한한돈협회가 한돈농가를 위해 자구책을 마련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자구책을 보니 비축과 소비증대를 위해 ‘10+1 할인’, ‘100만원 이상 구매 시 15% 추가 할인’ 등 가격할인행사가 주류다.

한돈의 지속적인 수요창출을 위한 한돈자조금과 대한한돈협회의 상품 전략에 변화가 필요하다. 소비의 큰손으로 주목받고 있는 밀레니얼 세대들은 국내산이라고, 가격이 싸다고 무작정 지갑을 열지 않는다. 공급자 위주의 획일화된 한 가지 상품으로 다양한 시장 환경에 차별화된 가치를 원하는 소비자들의 요구에 가격할인만으로 대응하는 것은 임시방편은 되겠지만 지속가능을 위한 대안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품질의 등급화를 시도해야 하고 인식의 차별화를 구축해야 한다. 돼지도체등급제는 어렵고 이력제는 약하다. 다른 종이거나 다른 사육방식이어야 쉽다. 국내산 돼지를 모두 ‘한돈’이라고 부를 이유도 없고 한돈이 꼭 하나의 종자일 필요도 없다. 없는 스토리를 지어낼 수는 없다. 지속가능함은 진정성과 차별화에서 나오고 차별화는 품질의 변화와 인식의 변화로 가능하다. 그동안 실험실에만 있던 돼지 종자를 사육장으로 끌어낼 때가 아닐까.

<필자소개>
최낙삼 좋은상품연구소 소장은 공주대학교 겸임교수로, 책 ‘저성장시대에 상품기획을 잘하는 10가지 방법’의 저자다. 대한민국 1세대 머천다이저(Merchandiser)로 KBS 2TV <대단한 레시피> 상품평가위원으로 활동했다. 국내외 40여 개 유통 전문기업의 상품기획자들을 위한 직무강의와 상품기획 컨설팅을 비롯해 15개 대학의 출강을 통해 기업현장에서 필요한 상품기획 지식과 대학교육의 연결고리를 현장감 있게 만들어내는 상품기획 전문가다.

/최낙삼 좋은상품연구소 소장, 공주대학교 겸임교수

[신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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