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구제금융 이야기를 다룬 ‘국가부도의 날’이 지난해 개봉해 괜찮은 흥행성적을 보여줬다.
20년도 넘은 그 시절. 아버지가 30년 가까이 다녔던 직장에서 명예퇴직 하고 가족들 앞에서 ‘적어도 먹고 살고 공부시키는 것은 지장 없게 하겠다’고 비장하게 말씀했던 것이 아직도 눈에 아른거린다. 어린 나이에 집이 망하는 줄 알고 울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영화의 내용과 시선에 대해서는 다소 논란이 있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IMF구제금융 사태는 오늘날 우리 일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경제 상황들을 만든 대한민국 경제 변화의 시발점이었다는 점이다.
적어도 국가부도의 날의 배경이 됐던 IMF구제금융 사태 이전까지는 한 직장에서 30년 가까이 다니는 ‘평생직장’이 당연한 개념이었다.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 세대에게는 매우 낯선 경험이지만 당시 개발도상국 경제상황에선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대한민국 1인당 GDP가 지난해 기준 3만 달러를 넘었다. 인구 5000만 이상의 나라 중에 국민소득 3만 달러가 넘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미국, 독일, 일본 등을 포함해 10개국이다. 수출은 6000억 달러를 돌파해 세계 6위이다.
최근 우리나라의 CDS프리미엄(credit default swap: 부도 위험 지표로 낮을수록 위험도가 낮음을 의미)은 근 12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 국가경제의 건전성과 신뢰성을 전 세계에 입증했다. 유럽 경제대국인 영국과 프랑스 보다 낮은 수치이며, G2의 한 축인 중국보다 월등하게 낮다.
2019년 대한민국 경제는 전 세계가 선진국으로 인정하고 있는데, 왜 이 나라를 살고 있는 우리 서민들의 삶은 90년대 개발도상국 시대였던 때 당연했던 것들이 힘겹다고 느끼는 것일까?
한 국가의 경제는 크게 가계(소비), 정부(지출), 기업(투자)로 이루어지며, 각각의 요소가 유기적으로 엮여 그 나라의 경기순환을 만들어 나간다. 모든 요소가 경중을 따질 것 없이 다 중요하지만, 특히나 가계소비는 경제의 성장과 회복을 촉진하는 촉매제의 역할이자 불황에서 소비를 창출해 경제순환을 만들어 내는 주체이기에 더더욱 중요하다.
그러나 IMF이후로 경제성장률에서 가계는 점점 소외됐고, 가계의 소득과 자산의 상위계층 쏠림 현상이 두드러졌다. 특히 자산의 불평등이 소득의 불평등보다 훨씬 높게 나타났으며, 이는 장기적으로 소득의 격차가 자산의 격차로 이어졌고, 이 차이는 지속적으로 확대 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차이와 불평등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게 된 것이다.
몇몇 대기업과 상위계층에 소득과 자산이 집중이 되는 불평등과 양극화가 지속된다면 일반 서민가계의 소비여력은 갈수록 감소한다. 이는 경기순환의 원동력인 가계가 경제주체로서의 역할을 점점 잃어버리게 돼 국가경제의 건전한 경기순환의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 그야말로 ‘불평등’이 ‘위기’를 만들어 버릴 수 있는 것이다.
다행히 최근에 당연하게 여겨졌던 ‘불평등’이 조금씩 개선돼 가는 신호가 보인다. 소상공인과 대기업에 불평등하게 적용됐던 카드 수수료가 소상공인 중심으로 인하가 됐고, ‘제로페이’ 등도 시도되고 있다.
성장만을 위해 불평등하게 희생했던 사람의 값어치도 최저임금, 기초연금, 아동수당 등으로 채워지고 있다. 이런 시도들 덕분인지 GDP가 예상을 웃도는 성장률을 달성함과 동시에, 민간소비가 2.8% 증가하면서 2011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기업의 설비투자도 6분기 만에 최고치인 3.8%증가했다. 이제 시작이지만 가계소비의 경제적 역할을 점점 넓혀가는 전환이 되고 있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의 대사 중에 “끊임없이 의심하고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게 항상 깨인 눈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는 대사가 있다.
IMF이후로 30년 ‘평생직장’이 생소한 개념으로 당연히 받아지는 상황이나, ‘경제위기’라고 말하며 개인의 희생을 당연시 하는 것을 의심해야 한다. 2019년에는 경제위기라는 울타리 속에 숨어있는 서민의 삶의 위기, 양극화의 위기, 불평등의 위기를 슬기롭게 차분히 풀어가길 소망한다.
/임세은 민생경제연구소 소장,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겸임교수, 경제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