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구속] 사법부의 날개 없는 추락…신뢰회복 전환점될까
[양승태 구속] 사법부의 날개 없는 추락…신뢰회복 전환점될까
  • 박선하 기자
  • 승인 2019.01.24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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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수장 구속에 법원 '충격'…'자정작용 첫 신호' 가능성
사법부 신뢰 나락 "참담하다"…내부 갈등 증폭 가능성도
시민단체 "양승태 구속, 사법부 신뢰 회복의 전환점 돼야"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진=연합뉴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진=연합뉴스)

엘리트 판사이자 전직 사법부 수장으로 법원을 총괄하던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구속됐다.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이자, 사법부 71년 역사의 치욕일로 기록될 비극적인 상황에 법조계는 큰 혼란과 충격에 빠졌다.

서울중앙지법 명재권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24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검찰이 청구한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에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국고손실,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공무상비밀누설 등의 혐의를 적용했다. 개별 범죄 혐의로 치면 40개가 넘는 혐의가 적시됐다.

명 부장판사는 이를 검토한 뒤 △범죄사실 중 상당부분 혐의가 소명되고 △사안 중대하며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25년 대선배를 구속을 허가하는 쉽지 않은 결정을 내렸다.

법원이 고심 끝에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을 결정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양 전 대법원장이 사법농단 사태를 단순히 보고만 받은 게 아니라 직접 지시한 정황을 보여준 검찰의 '직접개입 물증'이 법원의 판단에 결정적 역할을 했을 것으로 분석된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의 영장심사에서 3가지의 주요 물증을 제시했다. '김앤장 독대 문건', '판사 블랙리스트 문건', '이규진 수첩' 등이 그것이다.

양 전 대법원장은 "재판에 개입한 적이 없고, 법관에게 불이익을 주지 않았다"며 혐의를 철저히 부인했으나 검찰이 내놓은 구체적인 물증에 대한 충분한 해명을 내놓지는 못했다.

그 결과 양 전 대법원장은 헌정 사상 처음으로 검찰에 피의자로 소환된 데 이어 구치소에 구속 수감되는 사법부 수장이란 오점을 안게 됐다.

사법부는 전직 수장을 지냈던 인물을 자신들의 손으로 구속하며, 스스로 과거 재판의 독립을 훼손했던 죄를 어느 정도 시인했다.

이에 김명수 대법원장은 이번 일과 관련해 직접 "부끄럽고 참담하다.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 번 송구하다"며 국민에 허리를 숙여 사과했다.

삼권 분립의 한 축을 지탱하던 사법부의 끝 모를 추락에 후폭풍은 거센 모습이다. 특히 사법부는 말 그대로 '혼란'에 빠졌다.

현재 사법부 내에서는 사법부에 대한 국민 신뢰가 끝 모르는 나락으로 떨어지게 됐다는 참담함이 팽배하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전직 수장이 구속된 상황에서 어떻게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말할 수 있겠느냐"며 "법원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겠다"고 한숨을 쉬었다.

이번 사태가 사법부의 안정성을 흔들 수 있다는 걱정도 나온다. 전직 수장의 구속이라는 초유의 사태는 검찰과 정치권이 사법부를 압박할 전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을 기점으로 법원 내부의 갈등이 더 증폭될 수 있다는 우려 섞인 전망도 제기된다.

일부 구성원 사이에선 김명수 대법원장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초기에 이를 내부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검찰 수사에 협조하면서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자초했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 영장 발부가 사법부 신뢰 회복의 전환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많다.

당초 법조계 안팎에선 법원이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난을 각오하고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을 면하게 할 것이라는 전망이 상당했지만, 법원은 구속영장 발부를 선택했다.

상당수의 국민들은 법원의 이 같은 결정을 '방탄법원'이란 오명을 벗는 첫걸음으로 평가하며, '사법개혁'에 박차를 가할 계기가 될 수 있도록 격려를 보내고 있다.

따라서 재판부가 양 전 대법원장의 본격적인 심리에 돌입해 법과 양심에 따라 '성역' 없는 공정한 판단을 내리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노동·시민단체들은 이날 입장문을 통해 "양 전 대법원장 구속을 계기로 사법 적폐 청산을 이제야 겨우 시작할 수 있게 됐다"며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을 사법부 치욕이 아닌 사법부 신뢰 회복의 전환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sunha@shina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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