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구속] 전직 사법부 수장 발목잡은 '세가지 물증'
[양승태 구속] 전직 사법부 수장 발목잡은 '세가지 물증'
  • 박선하 기자
  • 승인 2019.01.24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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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행정권을 남용한 혐의를 받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3일 서울 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친 뒤 밖으로 나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사법행정권을 남용한 혐의를 받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3일 서울 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친 뒤 밖으로 나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사법부 치욕의 날로 기록될 전직 사법부 수장의 구속 결정이 나왔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정점'으로 꼽히던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결국 구속된 것.

법조계 안팎에서는 재판부가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을 결정한 데는 검찰이 제시한 '스모킹건'이 주요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24일 검찰 등에 따르면 앞서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에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국고손실,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공무상비밀누설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개별 범죄 혐의로 치면 40개가 넘는 혐의가 적시됐다.

서울중앙지법 명재권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전날 영장실질심사를 열고 혐의들을 검토한 뒤 △범죄사실 중 상당부분 혐의가 소명되고 △사안 중대하며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는 이유를 들어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양 전 대법원장이 사법농단 사태의 '정점'이다"는 검찰의 주장을 어느 정도 인정한 셈이다. 명 부장판사가 이 같은 판단은 검찰이 제시한 '직접개입 물증' 때문으로 분석된다.

당초 검찰은 재판 준비 과정에서 법원의 '공모관계 소명 부족' 프레임을 깨기 위해 양 전 대법원장의 직접관여 증거들을 확보하는데 총력을 가해왔다.

양 전 대법원장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주범'이라는 것을 사법부가 인정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보다 확실한 증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검찰은 영장심사에서 3가지의 주요 물증을 제시했다. '김앤장 독대 문건', '판사 블랙리스트 문건', '이규진 수첩' 등이 그것이다.

김앤장 독대 문건은 김앤장 측이 작성한 것으로 2015~2016년 양 전 대법원장이 한상호 변호사 등을 수차례 만나 일본 강제징용 소송 절차를 논의한 내용이 담긴 것으로 의심된다.

판사 블랙리스트에는 당시 법원행정처가 인사 불이익을 줄 판사들을 나눠서 보고하면, 양 전 대법원장이 직접 'V' 표시를 해 최종 결정을 내린 정황이 담겨있다.

이규진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지난 2015년부터 대법원 양형위원회 위원으로 일하면서 각종 재판 거래와 법관 사찰 등에 개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이 과정에서 윗선의 지시나 보고 내용을 모두 3권의 수첩에 꼼꼼하게 기록했는데, 검찰은 한자 '大(대)'자로 표시된 부분은 양 전 대법원장의 지시사항이라고 판단했다.

검찰은 구속영장심사에서 양 전 대법원장이 각 범죄혐의에 '직접' 개입한 정황을 중심으로 범죄의 반헌법적 성격을 부각해 재판부를 설득했다.

특히 일제 강제징용 재판개입 관련 사건에서 양 전 대법원장이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박 전 대법관에게 '재판거래'를 진두지휘한 정황을 부각시켰다.

검찰이 다수의 진술과 객관적 물증 등 '구체적인 증거'를 앞세운 만큼 재판부는 충분한 해명을 내놓지 못한 양 전 대법원장의 입장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양 전 대법원장 측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실무진이 한 일" 등의 발뺌 전략을 사용했다. 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직권남용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법리 다툼도 벌였다.

법조계에서는 양 전 대법원장의 주장이 검찰이 제시한 핵심적인 증거를 막아내기엔 역부족이었다는 평가를 내놓는다.

또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내놓은 후배 법관이 거짓 진술을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 점은 오히려 증거인멸 우려를 키웠을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결국 이런 결과가 나오자 법조계 일각에서는 사실상 법원이 양 전 대법원장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정점'이자 '주범'이라는 점을 인정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마저 내놓고 있다.

sunha@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