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유독 정이 많은 민족이다. 명절 때 마다 작은 선물꾸러미라도 들고 은사나 지인들을 찾아 감사인사를 전하는 모습을 우리만큼 흔히 볼 수 있는 나라가 얼마나 되겠는가. 또 명절 전 직장인들 손에 들린 이런저런 선물꾸러미를 보고 있노라면 정겨울 따름이다.
하지만 이런 모습들도 이제는 예전만 못하다. 택배망이 전국에 워낙 잘 발달돼 있다 보니 이제는 회사에서도 직원들에게 명절선물을 택배로 배달해주는 곳도 많고 시댁이나 처가에 들고 갈 선물을 명절 전에 미리 택배로 보내는 경우도 많다.
우리나라는 디지털 강국의 면모답게 일찍이 온라인쇼핑몰들의 약진으로 물류선진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신속하고 정확한 택배서비스가 중요한 산업으로 자리 잡고 있다. 당일배송은 물론이고 밤에 주문하면 새벽에 대문 앞에 배달해주는 서비스까지 내놓고 있을 정도다.
한국통합물류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택배물동량은 25억여개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국민 1인당 한해에 50회 정도 택배서비스를 이용한 셈이다. 2015년 18억개 정도에서 매년 꾸준히 10%이상 증가세를 보인 것으로 매출액도 2015년 4조3000억원 가량에서 2018년에는 5조6000억원을 상회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택배물동량 세계 1위국은 중국이다. 중국 국가우정국에 따르면 중국은 택배물동량이 연간 500억개에 달한다고 한다. 단순 수치로만 보면 우리의 20배 정도로 대단해 보인다. 하지만 이를 14억명 인구로 나눠 보면 중국국민 1인당 한해 35개 정도의 택배서비스를 이용한 셈이다. 우리보다 국민 1인당 택배물동량으로 치면 30%정도 낮은 수치다.
물류를 잡으면 유통을 잡는다는 말이 있다. 택배산업은 농업, 제조업, 온라인쇼핑몰 같은 서비스업 등 다양한 사업과 연결돼 있어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산업임이 분명하다.
다만 대부분 지입형태로 운영되는 배달현장의 열악한 근로환경과 저임금 구조와 집하장의 불합리한 노동시스템 등이 항상 도마에 오르고 있다. 오죽하면 집하장 상하차 아르바이트는 극한알바로 악명이 자자할 정도다. 여기에 택배사들의 과도한 경쟁구도는 택배단가 인하를 불러오고 이는 택배종사자들에게 전가된다는 점 또한 택배산업의 구조적 모순을 불러오고 있다.
지난해 택배물동량 1개당 평균 단가는 2227원으로 2017년 2248원보다 0.9% 감소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2015년 2391원과 비교하면 3년 사이 164원(6.8%)이나 하락한 수치다. 어찌 보면 대량수요가 단가하락으로 이어지는 당연한 경제논리로 볼 수도 있지만 제 살 깎아 먹기 식의 과도한 경쟁이 자칫 택배노동자들의 삶을 더 고단하게 하고 있지 않는지는 들여다 봐야한다. 지난해 11월 국내 택배시장의 50%가량을 점유하고 있는 CJ대한통운과 관련된 택배종사자들의 연이은 안타까운 사망을 계기로 택배노조가 총파업에 들어가며 택배대란으로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회사와 택배노조의 대립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설날을 앞두고 이번에는 택배노조 우체국본부가 파업을 예고하고 나섰다. 파업으로 이어진다면 설날 택배배송 차질로 소비자들이 큰 불편을 겪을 수 있다. 대기업은 협력업체를 기반으로 운영되고 우체국택배 역시 비정규직인 위탁배달원을 운영한다. 택배노조 우체국본부는 이 위탁배달원 1100여명으로 구성된 단체다.
택배산업의 급상장기에 생긴 구조적 문제들을 이제는 정부가 수수방관해서는 안 된다. 속도전으로 치닫는 택배업계의 경쟁구도에서 근로자들의 지위와 노동환경, 안전에 대해 정부는 물론이고 정치권에서도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찾아 나서는 노력이 있어야 택배산업의 안정적 발전이 가능 할 것이다.
이번 설날에 택배를 받는다면 ‘감사하다’는 따뜻한 한마디 잊지 말고, 정성껏 마련한 선물을 직접 전달하며 정을 나눠보는 것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