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명 바꾸고 형량 줄이고…국회의원들 '재판 청탁'
죄명 바꾸고 형량 줄이고…국회의원들 '재판 청탁'
  • 박선하 기자
  • 승인 2019.01.16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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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교·전병헌·이군현·노철래, 임종헌에 재판 민원
서 의원 "청탁 없다…모든 것은 법원이 판단" 부인
양승태 사법부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핵심 인물로 꼽히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사진=연합뉴스)
양승태 사법부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핵심 인물로 꼽히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사진=연합뉴스)

전·현직 여야 의원들이 대거 법원행정처에 '재판 청탁'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16일 검찰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핵심적 인물'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수사 과정에서 이 같은 정황을 포착했다고 밝혔다.

임 전 차장은 양승태 사법부 시절 숙원사업인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적극적으로 국회의원들의 편의를 봐줬던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에 따르면 우선 임 전 차장은 2015년 5월 서영교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으로부터 재판 청탁을 받아 담당 판사를 압박했다.

당시 임 전 차장은 국회에 파견 나간 판사를 통해 서 의원의 지인 아들 A씨 재판과 관련한 청탁을 받았다. 죄명을 바꾸고 형량을 선처해달라는 내용이었다.

A씨는 강제추행미수 혐의를 받고 있었다. 강제추행을 저지르면 10년 이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 벌금형을 선고받는다. 미수도 이에 준하는 무거운 형이 선고될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A씨는 이미 공연음란죄로 처벌받은 전력이 있으며 범행 당시 운전을 하다가 피해자를 보고 계획적으로 접근하는 등 죄질이 좋지 않아 징역형이 선고될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임 전 차장은 해당 법원장과 A씨 재판을 맡은 재정합의부장에게도 청탁을 전달해 비교적 가벼운 형량을 선고 받도록 했다.

A씨는 혐의가 바뀌지는 않았으나 징역형을 피해 벌금 500만원이 선고됐다. 추행이 미수에 그쳤고, 피해자와 합의한 점을 양형에 반영했다는 게 당시 재판부의 설명이었다.

전병헌 전 의원도 재판과 관련한 민원을 넣었다. 같은 해 4~5월 임 전 차장은 전 전 의원으로부터 손아래동서인 임모씨의 형사재판과 관련해 '조기 석방' 청탁을 받았다.

임씨는 동작구청장 후보자 선출과 관련해 후보자 부인에게 2억1000만원을 받은 혐의(정치자금법 위반)로 기소돼 2014년 1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 됐었다.

임 전 차장은 사법지원실 심의관에게 예상 양형 검토보고서 작성을 지시했다. 보고서에는 '형량을 8개월로 줄이면 보석 결정 후 잔여 형기를 복역할 필요가 없다'는 내용이 담겼다.

실제로 임씨는 파기환송심에서 보석과 징역 8개월을 선고 받았다. 당시 재판장은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재판개입 의혹과 관련해 수사대상에 올랐던 김시철 서울고법 부장판사이다.

노철래·이군현 전 의원에게도 비슷한 유형의 양형 검토문건을 작성해줬다. 이들은 2016년 8~9월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은 바 있다.

이외에 임 전 차장은 2015년 3~6월 법원 재임용에서 탈락한 서기호 전 의원이 법원행정처를 상대로 낸 소송을 원고 패소 판결하기 위해 대응문건을 만들도록 지시하기도 했다.

임 전 차장은 소송을 맡은 서울행정법원의 조한창 당시 수석부장판사를 직접 만나 "소송을 빨리 원고 패소로 종결해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같은 수사 결과에 따라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지난 15일 임 전 차장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추가 기소했다.

한편, 서 의원 "청탁을 한 적이 없다"며 "죄명을 바꿔 달라고 한 적도, 벌금을 깎아달라고 한 적도 없다. 모든 것은 법원이 판단하는 것"이라며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전 전 의원과 노 전 의원, 이 전 의원은 아직 별 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sunha@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