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행·성폭력으로 얼룩진 한국 체육계의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면서 국민들을 당혹케 하고 있다. 쇼트트랙 심석희 선수의 용기 있는 폭로로 시작된 체육계 ‘미투’는 여자농구, 여자유도 등에서 피해 사례가 잇따라 폭로되고 있다.
체육계 성폭력 문제가 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르자 14일 문재인 대통령은 ‘스포츠 강국 대한민국의 화려한 모습 속에 감춰져 온 우리의 부끄러운 모습’이라면서 철저한 조사와 엄중한 처벌을 요구했다.
이낙연 국무총리도 15일 체육계의 폭력·성폭력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한민국 체육의 미래가 걸려 있다면서 대한체육회는 명운을 걸고 내부를 혁신해달라고 주문했다. 이 총리는 그동안 체육계에서 추문과 잡음이 끊이지 않았고 체육계 쇄신의 요구도 높아졌지만, 체육계는 달라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회원종목 단체의 폭력·성폭력 조사와 징계에서 자정기능을 상실했다는 비판을 받아온 대한체육회는 앞으로 관련 사건의 조사를 모두 외부 전문기관에 맡기기로 했다고 밝혔다. 체육회는 폭력·성폭력을 조직적으로 은폐하거나 묵인·방조한 회원종목 단체를 즉시 퇴출하고 해당 단체 임원에게도 책임을 묻기로 했다. 구체적인 실행 방안으로 메달을 포기하더라도 체육계에 만연한 온정주의 문화를 철폐하겠다고 다짐했다.
체육회는 폭력·성폭력 전수조사 결과에 따라 처벌 대상의 검찰 고발을 의무화하고 홈페이지에 관련자 처벌과 징계 내용을 의무적으로 공시하기로 했다.
체육계의 폭력과 성폭력은 사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현장에서는 이미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었지만 나서서 드러내지 못했던 것은 성적 지상주의로 점철된 엘리트 체육의 시스템 때문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폐쇄된 공간과 사회에서 ‘금메달’을 목표로 훈련받고 메달획득이 곧 성공으로 이어지는 시스템 탓이다. 그 과정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금메달’만 목에 걸 수 있다면 모든 것이 용서되는 시스템이 부른 재앙이다.
뒤늦었지만 정부와 체육계는 현행 엘리트 체육의 시스템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합숙과 도제식 훈련 방식의 전면적인 쇄신책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오랜 관행과 답습에 익숙한 체육계가 환골탈퇴 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철저하게 인맥 사슬로 이뤄진 체육계가 스스로 자정하기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변화를 두려워하고 저항하는 세력이 시간이 지나면 다시 고개를 들지도 모른다.
이런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서는 ‘불가역적 변화’가 필요하다. 체육계의 ‘침묵의 카르텔’을 깰 수 있는 내부자 고발이 이어져야 한다. 뼈를 깎는 아픔을 각오한 철저한 반성 속에 새로운 법과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신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