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00만원서 240조원…반백년 삼성, 437만배 성장 비결은?
3700만원서 240조원…반백년 삼성, 437만배 성장 비결은?
  • 김성화 기자
  • 승인 2019.01.07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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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만원 적자에서 30조원 이익…직원수 36명→10만명
혁신(Innovation), 투자(Invest), 세계화(International) 전략에 ‘톱(T·O·P)’ 리더
(사진=한국CXO연구소)
(사진=한국CXO연구소)

오는 13일은 삼성전자가 설립된지 50년, 꼭 반백년이 되는 날이다. 강산도 5번은 변했을 기간에 삼성전자는 외형적으로 437만배가 커지는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뤘다.

7일 한국CXO연구소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공식 법인 설립은 1969년 1월13일 ‘삼성전자공업(주)’로 시작했다. 설립 첫해 3700만원의 매출액은 당시 금성사(現 LG전자)가 올린 매출 117억원의 0.3%에 불과했다.

1969년 회사 설립 후 15년 동안 경쟁사이던 금성사를 이겨본 적 없던 삼성전자는 1970년 흑백TV 생산, 1977년 컬러TV 양산, 1979년 전자레인지 양산, 1983년 PC 생산 시작 등 전자업계에 자리잡기 시작했다. 또 그 사이 한국 반도체㈜를 인수하며 현재 삼성전자의 핵심이 된 반도체도 기틀을 마련했다. 1988년 11월 삼성반도체통신과 합병하며 본격적으로 반도체 시장에 뛰어들었고 최근 삼성전자는 창립기념일을 1월에서 11월로 바꾸기도 했다. 

1984년 1조3516억원의 실적으로 사상 첫 매출 1조원을 돌파하며 금성사를 넘어선 삼성전자는 1994년에는 11조5180억원으로 10년 동안 외형적으로 8.5배 성장했다. 이때는 이미 업계 2위와 매출 격차가 2배 이상 차이나기 시작했다.

이어 2004년에는 57조6323억원으로 매출 50조원대 이상을 기록했고 2010년(112조2495억원)에는 100조원 고지를 넘어섰다. 2017년은 161조9150억원으로 역대 최고 실적을 기록했으며 연결 재무제표 기준 240조원은 1969년 설립 첫해 대비 ‘437만배’ 성장한 수치다.

외형적 성장만큼 내실도 탄탄해져 갔다. 설립 첫해 삼성전자는 400만원 순손실을 기록했지만 1979년에는 105억원으로 이익이 크게 늘었다. 1980년 오일쇼크 영향을 피하지 못하며 55억원 적자를 보기도 했지만 삼성전자는 이 시기 이후 당기손실을 기록한 적이 없다. 1981년부터 2018년까지 38년 연속 당기순익 흑자 행진을 기록 중이다. 

1988년은 순익 1000억원 시대를 열었으며 1995년에는 2조5054억원으로 조 단위 순익을 올렸다. 2017년은 순이익만 28조8000억원이다. 1969년부터 2017년 사이 삼성전자 총 매출액은 1800조원이 넘으며 영업이익은 232조원 이상으로 평균 영업이익률은 12.9%다.

우리 경제에 대한 기여도를 즉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고용 증가도 크게 늘었다. 설립 당시 36명이던 직원 수는 1973년 1458명, 1978년 1만1504명, 1987년 2만2216명, 1994년 5만1926명, 2011년 10만1970명 등 해를 거듭하면서 크게 늘었다. 2018년 3분기 기준 삼성전자 국내 전제 직원 수는 10만3023명으로 우리나라 단일 기업 중 최대 고용 규모다.

삼성전자 초대 대표이사 CEO 정상희 사장을 비롯해 2019년 1월까지 역대 삼성전자 대표이사를 역임한 전문경영인은 30명이 넘는다. 이중 최장수 CEO는 삼성반도체통신(주) 대표이사를 맡으며 삼성전자와의 합병에 크게 기여한 故 강진구 회장이다. 이외 이윤우 전 부회장이 대표이사만 17년 간 역임했으며 윤종용 전 부회장도 10년 넘게 전문경영인을 수행해온 3인방에 이름을 올렸다. 

삼성전자의 이런 성장에 대해 오일선 한국CXO연구소 소장은 “삼성전자라고 하는 세계적 기업이 탄생할 수 있었던 밑바탕에는 끊임없는 혁신(Innovation), 지속적이고 과감한 투자(Invest), 제품과 서비스의 세계화(International)를 지향한 ‘인삼(In-3)’ 전략이 유효했기 때문”이라며 “탁월한 경영 능력(Talent)을 가진 오너(Owner)와 전문경영인(Professional businessmen)을 중심으로 한 ‘톱(T·O·P)’ 리더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shkim@shinailbo.co.kr